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 기형도의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기형도의 시집은 머리맡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어 보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새로운 구절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온다. 아, 새로운 구.. 어느푸른저녁 2010.01.22
이승우, 《오래된 일기》, 창비, 2008. * 그렇게 엉겹결에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소설을 쓰면서 살 결심을 한 적은 없었다. 그것은 당선 통지를 받은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저 한 권의 일기장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됐다.' 그러나 여전히 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곧 알아차렸다. 일기.. 기억할만한지나침 2010.01.20
기억 * 집에 다녀왔다. 버스를 타고 고개를 넘어가는데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산과 들판에 남아 있었다. 털실로 짠 굵은 목도리가 좀 거추장스럽다고 느껴질만큼 기온이 올라가서 숨 쉬기가 한결 수월했다. 할아버지의 이른여덟번 째 생신을 맞아 흩어졌던 가족들이 오랜만에 한 집에 모였다. .. 어느푸른저녁 2010.01.18
우리는 모두 하얗습니다 * 눈이 참 더디게 녹는다. 내 자취방 마당 한 구석에는 아직도 하얀 눈이 쌓여있고, 바닥에는 치우지 않은 눈이 밟히고 밟혀서 빙판이 되어 버렸다. 출근을 할 때면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어서 대문까지 당도한 다음에야 집 밖으로 확신에 찬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내 자취방의 .. 어느푸른저녁 2010.01.12
아픔을 대하는 방식 어제는 뭘 잘못 먹었는지, 아니면 점심을 급하게 먹은 탓인지 속이 메스껍고, 가슴이 답답하고, 온몸에 열이 났다. 전에도 가끔씩 체한 적이 있어서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손을 따기도 하는 등 난리법석을 떨었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모양이었다. 도저히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을 것 .. 어느푸른저녁 2010.01.10
그렇게 작고, 가볍고, 햐안 눈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밖에 눈이 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오다 말겠지 했는데, 눈발이 더 심해지더니 오후 늦게나 되어서야 눈이 그쳤다. 오랜만에 많은 눈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텔레비전에는 대설특보가 내린 강원 영동 산간 지역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도로는 그칠 줄 .. 어느푸른저녁 2010.01.05
2009년이여 안녕, 그리고 방금 막 12시가 지났으니, 2010년이다. 연초가 되면 했던 숱한 다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2009년은 내게 어떤 해로 기억될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기억이란, 그것을 하려고 들면 사라져버리고, 나중에 남는 것은 기억하려 애쓰지 않았던 것들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결국은 .. 어느푸른저녁 2010.01.01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 바람이 무섭게 분다. 차가운 바람이 피부에 닿을 때면 비명이 터져나올것만 같다. 두꺼운 코트에 목도리를 칭칭 감고 있어도 차가운 공기와 매서운 바람의 무차별 공격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런 날, 직장 동료들과 함께 술집에 가서 술을 마셨다. 떠나가는 동료들을 위한 송별식이.. 어느푸른저녁 2009.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