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어요 그런 날이 있어요. 무작정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뒤져본다던가(누군가에게 전화가 온다거나 혹은 전화를 걸 사람도 없으면서), 예전에 한참 주고받던 이메일의 맨 끝 페이지를 클릭해 본다던가, 괜히 바람불고 추운 거리를 목도리를 칭칭 동여메고 걸어다닌다던가, 혼자 코메디 프.. 어느푸른저녁 2009.12.06
웃음 직장에서 친절교육을 받았다. 제목은 친절교육인데, 사실은 웃음치료 비슷한 뭐 그런 교육이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웃고 살자는 이야기. 웃음 치료 강사의 얼굴은 당연한듯, 웃지도 않았는데 웃고 있는듯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강사의 얼굴을 보면서, 얼마나 웃으면 저런 주름이 .. 어느푸른저녁 2009.12.01
세 개의 깎지 않은 손톱과 일곱 개의 깎은 손톱 1. 일을 마치고 바로 미장원에 가서 머리카락을 잘랐다. 한 달 정도 긴 머리인데, 제법 뒷목을 덮는다. 집에 오는 길에 롯데리아에 들러 햄버거를 두 개 사들고와 저녁삼아 먹고, 손톱을 깎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인터넷에 접속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블로그에 들어왔다. 자판을 두.. 어느푸른저녁 2009.11.25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잠시 스쳐지나갔던 사람의 채취나 어디선가 보았던 짧막한 문구 혹은 우연히 들었던 노래의 한 구절이, 그 짧은 만남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동안 집요하게 나를 따라다니는 때가 있다. 그것은 벼락처럼 예측불가능하고 순간적이지만 아주 강렬하게 나의 뇌리에 남아서, 나를 스쳐지나.. 어느푸른저녁 2009.11.21
내 이름은 빨강 언제나 이름에 관해서 생각해왔다. 내가 가진,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해진, 타인에 의해 불려지는 이름. 나를 지칭하고, 때론 내가 그것에 의해 규정되기도 하는 이름. 예전보다 개명절차가 까다롭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바꾸고 있다고는 하지만, 웬만해.. 어느푸른저녁 2009.11.19
어느 순간 평소에는 너무나 익숙해서 아무런 감흥도 일으키지 못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무척이나 신선하고, 깊은 울림을 가진 것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내가 우연히 들어가 본, 한 소설가의 블로그에서 지금 내가 있는 곳의 익숙한 지명과, 내가 타고 다녔던 버스와, 그 버스 안에서 느꼈던 감정을 .. 어느푸른저녁 2009.11.17
장 주네, 『도둑 일기』, 민음사, 2008. 작가가 쓴 자전적 소설인 는 아마도 독자들의 오호가 분명히 갈리는 작품일 것이다. 아니, 단순히 좋고 싫음의 상태를 떠나서 읽을 가치도 없는 쓰레기나 배설물에 불과하다는 평가에서부터 악에서 피어난 한 떨기 꽃을 보는 것 같다는 무척이나 시적인 평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극과 극을 오가는 평가를 받을만한 작품인 것이다. 우선 나 자신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양극단의 심리상태를 경험했다. 그것은 참으로 묘한 기분에 빠지게 했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꼬아놓은 문장들을 대할 때면 갑자기 화가 치밀고 그 자리에서 미련없이 책을 집어던지고 싶다가도, 마음을 가다듬고 몇 번 그 문장을 곱씹다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무척이나 고귀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 흔해빠진독서 2009.11.16
장 주네, 《도둑 일기》, 민음사, 2008. 나는 그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벅찬 감정으로 말한다. 그 당시를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본래의 의미보다 쓸데없이 화려하고 매혹적이며 과장된 단어들이 떠오른다면, 아마도 그건 그 단어들이 드러내는 비참한 삶, 바로 내 것이었던 그 비참함을 의미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이 경이로움의 기원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그 비참함을 가장 고상한 물건들의 이름으로 기록하면서 그 시절의 명예를 되찾고 싶다. 나의 승리는 언어로 이룩된 것이다. 나로서는 그 호화로운 말들에 승리를 되돌려 주어야 하지만 그러한 미사여구를 구사하도록 하는 비참한 삶에 축복을 내릴 것이다.(82쪽) * 나는 너무나 무거운 슬픔을 몸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일생을 계속 그렇게 떠돌게 되지 않을까 .. 기억할만한지나침 2009.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