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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북쪽 거실》, 문학과지성사, 2009.

네가 그곳에 있고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과, 네가 그곳에 있고 내가 외국에 머문다는 사실과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실제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그것이 파생시킬 수도 있는 온갖 가능한 가상의 거리들에 관해서 생각을 해보았는데, 일시적인 결론은 편지, 편지를 쓸 수 있으며, 내가 외국에 있으면 너에게 더욱 많은 편지를 쓸 수 있으리라는 것, 그렇게 되리라는 것, 그렇게 될 수밖에 없고 너에게 더 많은 것을 편지로 얘기해줄 수가 있으며 내 안에서 더 많은 편지들이, 편지들로 태어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억누를 수 없는, 지나가는 순간들까지도. 오직 찰나의 기억만을 허용하고 사라져가는 순간들까지도. 우리가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결코 너에게 전달하려고 시도할 수 없었을 그런 순간들을.(19쪽) * 글을 쓴다는 ..

북쪽 거실

나는 지금 K시의 한 모텔에 와 있다. 4일간의 교육을 받기 위해 나 혼자 낯선 곳에, 낯선 모텔에, 낯선 사람들을 지나쳐 와 있는 것이다. 교육을 받은 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이곳에 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한파가 몰아닥쳤다. 출장을 오기 전 여벌의 옷을 준비해 오지 못해서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있다.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외투가 무척 얇다는 사실이다. 오늘은 교육을 마치고 모텔로 돌아오는 길에, 너무 추운 나머지 신음소리까지 내고 말았다. 아아, 너무 춥구나. 추위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 역시 추위 때문에 얼어붙을지도 모르겠구나. 어서 따뜻한 국물을 마셔야 할 텐데.. 모텔로 들어가기 전에 저녁을 먹었다. 이곳에는 저녁을 먹을만한 식당이 마땅치 않다. 띄엄띄엄 보이는 식당 중 깨끗해 ..

어느푸른저녁 2009.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