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장마도 아닌데, 며칠째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비는, 천천히, 조금씩 흩뿌리듯 내렸다. 한낮에도 짙은 먹구름 때문에 사방이 온통 회색빛이었고, 땅 위엔 빗물이 고인 자리가 수두룩히 생겨났다. 휴교를 한 학교가 많았지만 신종플루 때문인지 거리엔 아이들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 어느푸른저녁 2009.11.13
흔들리는 것들 무작정 글쓰기 버튼을 클릭하고 자판을 두드린다. 내면의 무언가가 자꾸만 나를 다그치는데, 나는 왜 그러는 것인지 이유를 알지 못한채 발만 동동 굴리고 있다. 내가 나를 알 수 없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귓가로 웅웅거리는 소리와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그것은 바람.. 어느푸른저녁 2009.11.11
슈테판 츠바이크, 『광기와 우연의 역사』, 휴머니스트, 2004. "어떤 예술가도 매일 스물네 시간을 쉼없이 예술가로 있을 수는 없다. 예술가가 이루어낸 본질적이고도 지속적인 것은 모두 아주 드물고도 짧은 영감의 순간에 창조된 것이다.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위대한 시인이자 시대를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 역사(歷史)도 그와 같아서 결코 쉬지.. 흔해빠진독서 2009.11.08
슈테판 츠바이크, 《광기와 우연의 역사》, 휴머니스트, 2004. 예술의 영역에 나타난 한 명의 천재는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마찬가지로 역사상의 별 같은 순간은 이후 수십 수백 년의 역사를 결정한다. 전 대기권의 전기가 피뢰침 꼭대기로 빨려들어가듯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이 시간의 뾰족한 꼭지점 하나에 집약되어 실현되는 것이다. 보통은 평온.. 기억할만한지나침 2009.11.08
내가 바라본 세상 영주에서 울진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차장 밖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문득 내가 보는 세상은 이렇게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는 모든 것들, 폭력적이고 우연한 사건 사고들과, 너무도 극적이어서 진부하기 그지없는 드라마와 사자와 .. 어느푸른저녁 2009.11.02
생텍쥐페리, 《야간비행, 남방 우편기》, 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리비에르는 좀 걸으면서 그를 엄습하는 불안감을 덜고자 밖으로 나갔다. 오직 행동을 위해서만, 극(劇)적인 행동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그였지만 이상하게 극이 멀어지면서 사적인 것이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도시의 소시민들이 야외 음악당 주위를 서성이며 겉으로는 조용한 삶을 살지만 사실.. 기억할만한지나침 2009.10.29
사회생활의 정의 술을 마시면 안되는데, 술을 마셨다. 물론 몇 잔 밖에 마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술은 술이니까. 술을 마시냐는 의사의 질문에 조금요, 라고 대답했더니, 이제는 조금도 마시면 안됩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술자리에 가게 되면 한 두 잔, 많게는 네 다섯 잔 정도 마시게 된다. 아.. 어느푸른저녁 2009.10.28
어떤 생일 새들도 자살을 할까?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출근을 해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저 밖에서 갑자기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또 아이들이 장난을 치다가 유리로 된 출입문에 부딪친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 소리는, 비둘기 한 마리가 유리문에 부딪쳐 생긴 소.. 어느푸른저녁 2009.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