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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나는 슬픔에 대해 생각해왔다

오랫동안 나는 그 일을 생각해왔다. 생각하고 생각해 마침내는 이해해보려고 나는 이 방에 머물고 있다. 오래전, 이 방 바깥에서 내 등을 두드리며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 이가 누구였는지 모르겠다. 그의 이름이 뭐였는지 내가 어쩌다 그 사람을 만났는지 그가 내게 중요한 사람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조차 기억해낼 수 없다. 밤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어. 컴컴한 모퉁이에서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이 이해할 수 있다는 나를, 나는 왜 이해할 수 없는가.(황정은, '웃는 남자' 중에서 - 소설집, 『아무도 아닌』 수록) * 오래전 황정은의 을 읽었을 때만 해도 나는 이 작가에 대한 막연한 인상만을 품고 있었다. 지금 그 소설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흔해빠진독서 2022.01.16

멀리

우리는 바다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해서 앞으로 갔다. 바닷가에 차를 세워두고 골목길 안쪽에 있는 허름한 식당에서 생선구이로 저녁을 먹었다. 나는 내가 바닷가에서 자랐노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그리고 불현듯, 지금은 사라진 공항을 찾지 못해 깊은 밤을 방황하던 두려운 베를린의 11월에 대해서도. “그 공항은 마치…. 감옥처럼 보였어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혀있는 오래전 여자 친구 이야기를 했다. “35년 동안 나는 적어도 일년에 한 번은 그녀를 면회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갔죠. 작년에는 당신이 말한 바로 그 베를린의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갔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생의 예감에 내 내면의 빈 방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35년이나 그녀는 감옥에 있었군요! 도..

황정은, 《파씨의 입문》, 창비, 2012.

나는 죽은 뒤에 뭔가 남는다거나, 다시 태어난다는 거 믿지 않아. 왜. 믿고 싶지 않으니까. 어째서. 가혹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아. 뭐가 가혹해. 예를 들어, 네가 죽어서 나한테 붙는다고 해도 나는 모를 거 아냐. 모를까. 모르지 않을까. 사랑으로 알아차려봐. 농담이 아니라, 너는 나를 보는데 내가 너를 볼 수 없다면 너는 어떨 것 같아. 쓸쓸하겠지. 그거 봐. 쓸쓸하다느니, 죽어서도 그런 걸 느껴야 한다면 가혹한게 맞잖아. 나는 이 생에 살면서 겪는 것으로도 충분하니까, 내가 죽을 때는 그것으로 끝이었으면 좋겠어. 이왕 죽는 거, 유령으로 남거나 다시 태어나 사는 일 없이, 말끔히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얘기야. 그건 너무 덧없다고 내가 말하자, 덧없는 편이 낫다,라는 것이 유도 씨의 대답이었다. 죽어서..

우리는 다만 몸부림 칠 뿐인 존재들

* 그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게 된다. 음악은 그저 압도하는 풍광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속에서 몸부림치는 인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에 유일하게 인간에게 속하지 않은 어떤 것이다'라는 배수아의 문장이 떠오른다. 오로지 음악만이 저 말없고 광활한 풍광 속에서 살아 있고, 흘러가 종래에는 사라진다. 하지만 이것 또한 유한한 인간인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 자연은 그저 말없이 모든 것을 굽어보고만 있으니. 그냥 그렇게 존재하고만 있으니. 그 속에서 우리는 다만 몸부림 칠 뿐인 존재들인 것이다.

오후4시의희망 2022.01.15

파워 오브 도그

(스포일러 주의) *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제인 캠피온 감독의 영화 를 보았다. 이 영화는 뭐랄까, 여러모로 내 예상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외피는 서부극처럼 보이는데, 처럼 퀴어 로맨스 영화인가 싶다가도, 그보다는 인물들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인가 싶을 때쯤 차가운 복수극으로 끝난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제목의 의미가 무엇일까 계속 생각했다. '개'로 대변되는 세력은 도대체 누구인가? 혹은 무엇인가? 그 의문은 영화의 마지막에 피터가 읽는 성경의 한 구절을 통해서 비로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 '비로소' 나는 그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존재감과 그가 맡은 '필'이라는 인물의 위악적인 내면 때문에 그에게 자꾸만..

봄날은간다 2022.01.15

Hania Rani - Esja

* 폴란드 태생의 피아니스트라고 한다. 하니아 라니, 라고 발음하는게 맞는지 모르겠다.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듣게 되었다. 앨범 전체를,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그것도 공짜로 집에서 편하게 들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이자 행복인가. 오늘 백신 3차 접종을 하고 집에서 쉬면서 이 음악을 듣고 있다. 내린 커피와 함께. 차분하고 섬세한, 감정을 어루만지는 손길 같은 것이 느껴진다. 더불어, 백신이 내 몸에 들어가 퍼지는 것을 천천히 느끼고 있다. 피아노 선율과 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

오후4시의희망 2022.01.14

새해 첫 태양이 떠오르는 바다에 대해서

아직 2022년이 되기 전, 2021년 12월 중순의 어느 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새해 첫날에 특별한 일이 있나?" "아뇨, 별일 없는데요. 늘 그랬듯 늦게까지 잠을 잘 계획 외에는." 아버지는 실소를 터트렸다. "새해 첫날인데 해돋이를 봐야 하지 않겠나? 가까운 바닷가에 가서 해돋이도 보고 회 한 접시도 먹고 오면 좋겠다만." 나는 생각해보겠다고 말했고, 12월 30일에 급성 식중독 증상으로 사무실에 출근하지 못하고 집에서 끙끙 앓고 말았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지어먹었지만 그 여파는 생각보다 길어서 해가 바뀔 때까지도 몸이 아팠다. 당연히 아버지와의 약속 아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생기다 말아가지고... 라며 혀를 끌끌 찼고, 해돋이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코로나 시국인..

어느푸른저녁 2022.01.14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 안에 있으면서 도둑질하고, 간음하고, 살인하며 또한 글을 쓰는 것은?"

2018 오늘의 작가상 수상 작가 수상 소감 오늘 아침에 요가를 마치고 나서, 수상을 알리는 이메일을 받았다. 나는 7월부터 취리히에 머물고 있는데, 내일부터 한 달가량 취리히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 있을 예정이었다. 인터넷이 없는 그 여행 중에 쓰여질 이 짧은 글은, 이곳 취리히에서 시작하여 여행지의 어디에선가 끝날 것이다. 많은 다른 작가들처럼 나도 작가 이외의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 그건 번역이다. 창작과 번역은 많이 다르면서도 동시에 그만큼 비슷하여, 어떤 경우 창작은 번역이 되고 번역이 곧 창작이 되기도 했다. 두 가지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략의 규칙이라고 할 만한 습관이 생겼다. 한국의 집에 머물 때는 주로 번역을 하고 외국을 여행하는 동안에는 내 책을 쓴다는 것이다. 며칠 전 어느 매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