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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만한 지나침

요즘 내 블로그에 이라는 카테고리를 자주 들여다본다. 거기에는 내가 독서를 하면서 인상 깊었던 문장이나 오래도록 생각하게 만든 문장들을 기록해 놓았다. 한번 읽고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아쉬워서, 나중에라도 다시 한 번 더 보기 위해 기록해 둔 것이다. 지금 읽어보면 그 책에 이런 문장들이 있었어? 하고 놀라기도 하고, 이 문장들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은데,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기억이란 그런 것이겠지. 어쨌든 그렇게 기록해 놓은 글들을 다시 읽는 것은 새로운 발견을 한 듯한 느낌을 준다. 다시 읽기 위해 기록해 놓은 것을 다시 읽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다시 읽은 신형철의 에 이런 문장들이 나온다. "인간에게 특정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

어느푸른저녁 2021.11.17

난감하고 어이없으며 서글픈 일

어렸을 때 나는 어른들로부터 '너는 무슨 애가 생기다 말았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건 내가 자주 아팠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무슨 병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수시로 배가 아프다던지, 같은 운동을 해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쉬 지친다던지 하는 것 때문이었다. 그건 성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한창 팔팔할 때는 그나마 회복력이 빨라서 인지하지 못하다가 요즘 들어서는 조금만 움직여도 온 몸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는 것만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던 몸을 요즘에는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아마도 지난 추석에 조카와 배드민턴을 치다가 허리를 삐끗하고 난 뒤부터였을 것이다. 참,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좀 서글프기도 한 기분. 아버..

어느푸른저녁 2021.11.11

강원국, 백승권, 박사,《강원국 백승권의 글쓰기 바이블》, CCC, 2020.

말은 잘하는데 글은 못 쓰는 건 글을 많이 안 써봐서 그런 거예요. 또 말은 시간을 주지 않아요. 말은 바로 해야 하는데, 글을 시간을 주죠. 시간을 주니까 어떻게든 잘 써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검열을 하게 되죠. 또 검열하다 보니 글쓰기가 어려워지는 거고요. 또한 글을 쓰러면 형식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게 문법이죠. 말에도 어법이 있지만, 문법이 훨씬 엄격하잖아요? 그래서 좀 어려운 측면이 있지요. 자기 생각을 글쓰기의 어떤 방식 안에 담는 건데... 잘 쓰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말하듯이 쓰면 누구든지 잘 쓸 수 있죠.(19쪽) * 한마디로 착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단 시작하는 것. 우리 뇌는 무언가 착수했을 때부터 활성화하기 시작한다고 해요. '작동흥분이론'이라고 있어요.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터널스

이 모든 논란들은 도대체 누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인가? 영화를 보고 나와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노이즈 마케팅인가? 어째서 이 영화에 대한 혹평이 이리도 많은지, 혹평에 대한 기사만 한가득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영화는 '마블' 영화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블에서 나오는 모든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다 고만고만한 액션과 유머와 흥겨움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건 자기 복제와 무엇이 다른가? 모든 것을 다 비슷하게 만들어서 판매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애초에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터널스를 보러가면서 어벤져스를 기대한 것일까? 이것은 클로이 자오 감독이 만든 라는 영화인 것이다. 물론 그들의 기대감과 실망감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는 있다. ..

봄날은간다 2021.11.07

글은 결국 읽히기 위해 쓰는 것이라고?

이런 류의 책들, 그러니까 소위 실용서들은 정말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면 거의 읽지 않았다. 그저 흥미 위주로 읽기에는 우선 전혀 흥미가 일지 않았고, 간혹 필요에 의해서 읽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독서라기보다는 그저 공부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재미로 공부를 하기도 한다지만 내게 공부란 정말 각 잡고 앉아서 인내심을 가지고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기에, 공부를 위한 독서는 당연하게도 취미로 하는 독서보다 고역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글을 쓰고 싶어 하고 심지어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당연히 글쓰기에 대한 책을 한 권쯤은 읽어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오래전에 나도 '글은 이렇게 써야 한다'였는지, '당신도 글을 쓸 수 있다'..

흔해빠진독서 2021.11.04

Édith Piaf - Non, je ne regrette rien(영화, '파니 핑크' 중에서)

* 어떤 영화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나는 란 영화를 대학교 1학년 수업 시간에 처음 보았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다시 볼 기회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마치 내 어린 시절을 지배한 어떤 기억처럼 그렇게 간직하고 있다. 영화의 강력한 자장 안에 나는 지금까지도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 파니는 서른 살의 노처녀로 나오는데(지금 서른 살을 노처녀라고 하지는 않지만), 여자가 서른 넘어 결혼할 확률은 원자폭탄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있으며, 애인 없는 자신의 삶을 마치 패배자인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면서 왜 파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지 의아했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영화에 나오는 그 누구보다도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오후4시의희망 2021.10.30

* 영화의 마지막, 폴과 그의 어머니 제시카가 아라키스 행성의 원주민인 프레맨들의 주거지로 마침내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샤이 훌루드(거대한 사막벌레)를 타고 다니는 프레맨들을 보면서 놀란 폴에게 챠니가 말한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그래, 정말 이건 시작일 뿐이다! 하지만 그 시작은 정말이지 창대하지 않은가! 그 창대한 시작을 직접 목도하게 되어서 감격이랄밖에.

봄날은간다 2021.10.24

사랑은 오직 혁명이라고, 하지만

오랫동안 저는 사랑은 혁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은 오직 혁명이라고. 하지만 한 가지 더해진 점이 있다면 사랑은 더 많이 살게 합니다. 사랑은 더 많은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것이 아마 삶의 혁명이 아닐까 생각해요. - 2021. 10. 10. KBS뉴스, '에세이스트의 책상' 작가 인터뷰 중에서 * 배수아의 초기 작품과 독일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던 때의 작품 『에세이스트의 책상』, 『부주의한 사랑』, 『훌』,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이렇게 네 권이 양장본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나는 그 중에서 아직 읽지 않은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를 구입했다.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책소개와 작가 인터뷰가 나온 것을 보았다. 매스컴에서 배수아 작가를 접할 기회가 잘 없었는데 공중파 방송에서 이렇게 멋드러진 소..

어느푸른저녁 2021.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