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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외롭고 고독하다, 그래서

얼마 전에 '로맨스 스캠' 범죄가 다시 기승을 부린다는 기사를 보았다. 로맨스 스캠이 무엇인지 찾아보니 인터넷에 이렇게 나온다. "로맨스 스캠이란 연애를 뜻하는 ‘로맨스(romance)’와 신용 사기를 뜻하는 ‘스캠(scam)’이 합쳐진 말로, SNS 등으로 친분을 쌓은 뒤 돈을 갈취해 내는 사기 기법을 뜻한다. SNS 등을 통해 준수한 외모를 가진 타인의 프로필 사진을 도용하거나, 유명인 등으로 신분을 위장해 이성에게 접근해 애정을 표현하며 친분을 쌓은 뒤 거액을 뜯어내는 식이다."(에듀윌 시사상식) 그러니까 SNS를 통해 사진으로만(그것이 실제 본인의 사진인지 아닌지 확인하지도 못한 채) 만나고, 그가 하는 이야기로만(자신의 실제 직업이 미군 장교인지 의사인지 아니면 사기꾼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채..

어느푸른저녁 2021.09.28

George Michael - Roxanne

* 요즘 CD플레이어를 너무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놓은 CD들 중에 아직 한 번도 듣지 않은 것들도 있는데 요즘엔 그마저도 거의 유튜브로 음악을 듣고 있으니. 차분히 앉아서 음악만을 오롯이 감상하던 때가 아주 먼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오랜만에 수납장을 열고 진열해놓은 CD를 쭉 훑어보았다. 어떤 열정 혹은 매혹에 사로잡혀 즉흥적으로 혹은 오랜 열망으로 하나 둘 사놓은 음반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나름 모아놓은 음반들을 보고 있으니 오래 전의 내가 그것들을 샀을 때의 심정 같은 것들이 생각났다. 그중에 조지 마이클의 음반이 눈에 들어왔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음반은 와 두 개였다. 조지 마이클은 그 유명한 'Careless Whisper' 밖에 모르고 있었는데, 당시 ..

오후4시의희망 2021.09.26

아픔의 기록

이제 가을이라고 해야겠지. 고개를 들어보니 성큼 가을이 와 있다. 나는 8월 말부터 지금까지 유독 정신없는 날들을 보냈다. 새 업무를 맡으면서 가장 큰일이자 가장 부담되었던 일들을 어찌어찌 넘기고 나니 큰 산을 몇 개 넘은 기분이 든다. 물론 아직 마무리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고비는 넘긴 듯하다. 그게 스트레스로 작용을 한 것인지, 아님 단순히 운동부족이었는지 일을 하면서도 몸까지 아파서 더 힘들었다. 바쁜데도 불구하고 2차 백신을 맞아야 했기 때문에 며칠을 쉴 수밖에 없었다. 2차는 1차와는 달리 첫날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어서 의아했다. 흔히 2차 때 더 아프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째 날부터 1차 때와는 다르게 머리가 아파서 약을 먹어야 했다. 한 이틀 정도 머리가 아..

어느푸른저녁 2021.09.25

온갖 침묵들과 도약들로 이루어진

짐승들의 세계는 온갖 침묵들과 도약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짐승들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 그들은 대자연과 다시 접촉하면서 자연 속에 푸근히 몸을 맡기는 보상으로 자신들을 살찌우는 정기를 얻는 것이다. 그들의 휴식은 우리들의 노동만큼이나 골똘한 것이다. 그들의 잠은 우리들의 첫사랑만큼이나 믿음 가득한 것이다.(32쪽, '고양이 물루' 중에서, 장 그르니에, 『섬』, 민음사, 2020.) * 우연히, 길 모퉁이를 돌다가, 어느 집앞을 지나가다가, 혹은 어느 가게를 들어갔을 때 갑자기 고양이를 만날 때가 있다. 물론 대부분의 들고양이들은 내가 다가가거나, 서서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고개를 홰홰 저으며 민첩한 몸놀림으로 자리를 피하지만, 우연히 만난 몇몇 고양이들, 그러니까..

어느푸른저녁 2021.09.19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연일 계속되는 야근으로 많이 피곤하다.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자지도 않고 이렇게 블로그에 들어와 쓸데없는 글이나 쓰고 있다. 이건 어떤 보상심리 때문일까. 하루종일 일만하고 정작 나 자신을 위해 쓴 시간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책을 구입했다(그럴 정신은 있으니 다행이다). 독서모임에서 읽을 책과, 한강의 신작 소설, 그리고 요리책 몇 권. 요즘엔 독서도 거의 못하고 있는데, 책을 사는 걸로 그 안타까움을 달랠 수 있을까. 쌓여가는 책을 보면 한숨부터 나오지만 말이다. 어쨌든, 한강의 신작이 나왔지 않은가! 책 표지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제목은 . 책뒷편의 짧막한 글을 읽어보니, 이번 소설은 제주 4.3 사건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5월 광주를 그린 이후에 또 이런..

어느푸른저녁 2021.09.16

내 안의 내가 너무도 많아서

한창림은 전혀 생각해본 바 없었지만 사실, 그도 그의 아내도 이 세상에 있으면 안 될 사람들이었다. 조울증 환자인 아내, 툭하면 기이한 수컷 냄새나 풍기는 그, 둘 다 처음부터 이 세상에 있으면 안 될 사람들이었고 필연적으로 불행해질 사람들이었다. 그도 아내도 이 사회에서, 날 때부터 괴물로 운명 지어진 존재들이었다. 의 제이슨이나 의 프레디처럼 사냥감이 되어 평생 쫓겨 다닐 괴물의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괴물? 괴물의 정의는 의외로 간단하다. 사회 체계 바깥의 존재.(287~288쪽, 백민석, 『목화밭 엽기전』, 한겨레출판, 2017) * 백민석의 이 소설을 오래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쩐지 선뜻 읽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읽기도 전에 느껴지는 어떤 불온하고 불길한 정서가 나를 흠칫하게 만..

흔해빠진독서 2021.09.06

나무는 나무의 일을

저수지 주변은 고요했다. 그곳은 늘 나와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자주 찾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곳의 풍경과 바람 그리고 고요함이, 늘 내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고 마음이 내킬 때면 혼자 찾아가 조용히 걷다 오곤 했다. 이번에도 그런 마음이 나를 그곳으로 안내한 것이다. 언제나처럼 조용하다못해 고요한 그곳은 명상하며 걷기에 좋은 곳이다. 저수지 주위를 천천히 걷다가 생각난듯 고개를 들어보면, 저 멀리 보이는 넓은 논과 아담한 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탁 트인 공간이 주는 시원함을 폐 깊숙이 들이마시고 나면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저수지는 그리 크지 않다. 그 둘레를 걸으면서 푸른 나무와 이름모를 야생화와 들풀들, 갖가지 벌레들을 보는 그 시간이 내겐 너무 소중하다. 여름의 끝자락이라서..

어느푸른저녁 2021.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