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994

페터 한트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민음사, 2009.

페터 한트케의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은 매우 독특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비교적 짧은 소설이다. 책 뒷편에 실린 줄거리를 짧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요제프 블로흐라는 주인공은 여느 때와 다름이 없이 건축 공사장으로 출근을 하나, 자신을 흘끗 쳐다보는 현장감독의 눈빛을 해고의 통지로 짐작하고 아무런 말도 없이 공사장을 떠나 시내를 배회한다. 시내에서 아무런 의미없이 돌아다니는 그는 극장 매표소 여직원과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그 여직원이 일하러 가지 않느냐는 말 한 마디에 그녀를 목졸라 살해한 후 국경마을로 달아난다. 살해의 동기는 다르지만, 얼핏 카뮈의 이방인 속 뫼르소가 떠올랐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너무나 어이없는 살해였다는 것. 살해하고 난 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흔해빠진독서 2020.03.29

페터 한트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민음사, 2009.

블로흐는 문가에서 팔에 수건 한 묶음을 얹고 그 위로 회중전등을 든 아가씨를 보았다. 그가 아는 체를 하기도 전에 그녀는 복도로 나가 버렸다. 그녀는 문에 대고 잠을 깨워 미안하다고 했지만, 블로흐도 동시에 그녀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그녀의 뒤를 따라 복도로 나갔지만, 그녀는 다른 방에 들어가고 없었다. 블로흐는 자기 방으로 다시 돌아와 열쇠를 분명히 두 번 돌려서 문을 잠갔다. 나중에 그는 방 몇 개를 지나 아가씨를 뒤쫓아 가서 자기가 아까 착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수건을 세면대 위에 놓고 있던 아가씨가 "네, 저도 착각했어요."하고 대답했는데, 그녀는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복도 끝 계단에 서 있는 버스 운전사를 그와 혼동하고, 그가 이미 방에서 나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