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994

기억의 소수자들

불을 끄고 화장실을 나와 외출을 하고 돌아왔는데 화장실에 불이 켜져 있다 새 책을 꺼내 읽으려고 펼치는데 밑줄이 그어져 있다 버리려고 쓰레기통에 던져둔 메모지가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유령이 사는 걸까 경계심을 풀어서는 안된다 나는 천천히 인정해야 했다 망각이 사는 걸까 망각은 쓰레기처럼 제외될 뿐이지만 쌓이고 쌓인 기억의 지하실이다 날아온 화살도 없는데 불쑥 경련이 일어나는 것도 부르지도 않는데 노을을 따라나선 것도 바람이 불었을 뿐인데 다리가 풀려버린 것도 그대도 잊고 그리움만 남듯이 망각은 쌓여 늪이 되어 더는 비워버릴 수 없다 권위는 역전된다 잊혀진 의미들 기억의 소수자들 기억의 권위에서 버려진 것들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 백무산, 『폐허를 인양하다』, 창비, 2015.

질투는나의힘 2020.03.19

존 윌리엄스, 『스토너』, 알에이치코리아, 2015.

내 삶을 책으로 엮는다면 나는 과연 얼마나 많은 분량의 책이 될까? 그 사람의 생이 길면 긴만큼 많은 내용의 이야기가 담기게 될까? 아니면 살아온 시간과는 별개로 남들과 얼마나 다르게 살았는가에 의해서 한 사람의 일생이 말해질 수 있는 것일까. 비범하고 특별한 사람만이 책을 쓸 수 있는가? 누구보다 평범하다 생각되는 삶일지라도 혹은 누구보다 보잘 것 없다 생각되는 삶일지라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 책이 다른 이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어떤 공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평범하면 평범한대로, 보잘 것 없다면 보잘 것 없는대로 우리는 매일 우리들의 빈 페이지들을 채워나간다. 그 평범함과 보잘것 없음을 그저 묵묵히 쓰는 것이다. 누구나 다 특별할 수 없고, 누구나 다..

흔해빠진독서 2020.03.07

김숨, 『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 문학동네, 2019.

오래 전, 그게 언제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을만큼 오래 전의 어느 날, 나는 도서관에서 김숨이라는 이름을 처음 보았다. 아니, 이 조차 확실하지 않다.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이 도서관이었는지, 신문의 책소개란에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경로였는지. 지금 내가 도서관에서 처음 보았다고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에 나는 지금보다 더 자주 도서관에 갔고, 더 많은 책을 읽었고, 더 많은 고민과 생각에 잠기곤 했으며, 그래서 나를 둘러싼 세상을 더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 그때는 내 뚜렷한 취향도 알지 못한채 그냥 눈길 가는대로, 손에 잡히는대로 책을 읽던 시기였다. 아마도 나는 당시 도서관의 한국소설 코너에서 이런저런 소설을 훑어보던 중 '김숨'이라는 독..

흔해빠진독서 2020.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