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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혐오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 실격'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요즘들어 '인간 혐오'라는 말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지극히 자조적인 '인간 실격'이 아니라 다소 공격적인 '인간 혐오' 말이다. 내 주위의 모든 말들이 전부 나를 공격하고, 곤궁에 빠뜨리려고 하며,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상처를 내려고 안달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것은 지나친 망상인가? 딱히 무엇 때문이라고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지속적으로 기분이 좋지 않고, 어딘가 불편하며, 무엇을 해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때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이없고 허탈한 기분에 빠져들기도 한다. 누군가는 나이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어. 혹은 혼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걸거야. 일종의 히스테리인거지,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

어느푸른저녁 2020.01.30

배수아,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워크룸, 2019.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자신을 기억해 내려는 행위는 무용하며 오직 희미하게 남아 있는 감각을 따라가는 것만이 최선임을, 우리는 곧 알아차렸다.(11쪽) 이런 식의 감상문은 어떨까? 배수아의 소설 속에 나오는 문장들 중 인상적이었거나,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문장들을 배합하여 감상문을 완성하는 것이다. 소설을 읽고 느낀 점에 대한 내 생각(오해와 다름없는)을 두서없이 중얼거리는 것이 아니라 소설 속에 나왔던 문장들을 꺼내서 그것만으로 나만의 감상문을 만든다. 그 감상문이 무얼 말하고 있는지는 문장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알게(느끼게) 된다. 그것은 비록 내가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마치 내가 쓴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사실 모든 독서가 조금씩은 그렇지 않은가? 다른 어떤 작가보다도 배수아의 소설은 직관에..

흔해빠진독서 2020.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