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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난다, 2017.

언제부터인가 글을 구구절절 길게 쓰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어렸을 때는 책이 조금만 두꺼우면 읽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는데, 그래서 조금만 호흡이 긴 글을 읽으면 그만큼 길게 심호흡을 하고 겨우 읽고는 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산문과 비교해서 단순히 짧다는 이유만으로 시를 읽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어서, 어떤 시인의 시집을 읽기 전에 그 사람의 산문집을 먼저 읽는 버릇 또한 생겼습니다. 릴케가 그렇고, 잉게보르크 바하만이, 페르난두 페소아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여기, 그 목록에 추가해야 할 한 명의 작가가 더 생겼습니다. 이름은 박준, 책의 제목은 . 박준이라고 하는 시인의 은 참으로 감성적인 언어들로 쓰인 따뜻하고 아름다운 산문집이었습니다. 읽기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도 않은 일상의..

흔해빠진독서 2019.10.02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난다, 2017.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19쪽) *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떠한 양식의 삶이 옳은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 편지는 분노나 미움보..

휴버트 드레이퍼스, 숀 켈리, 『모든 것은 빛난다』, 사월의책, 2013.

어젯밤 술자리에서 지인이 허먼 멜빌의 을 읽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갑자기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자신의 현재 안부를 전하면서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반가웠는데, 그의 입에서 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더 반가워서 아, 그 책! 하면서 새삼 그의 얼굴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는 갑작스레 호들갑을 떠는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는데, 나도 그렇고 그도 술기운이 제법 올라서 우리는 서로 읽지도 않은 그 책에 대해서 흥에 취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마치 그 책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아직 읽지도 않은 그 책에 대해서 유별나게 호들갑을 떤 이유는, 그 책이 아니라 그 책에 대해서 쓴 다른 책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이전까지 허먼 멜빌의 에 대해서 작가의 ..

흔해빠진독서 2019.09.22

휴버트 드레이퍼스, 숀 켈리, 《모든 것은 빛난다》, 사월의책, 2013.

우리들 존재를 놓고 볼 때 의미 있는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우리 행동들 사이의 유의미한 차이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왜냐하면 바로 이런 차이들이야말로 우리가 누구인지 또는 무엇이 될지를 결정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삶의 특정 단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