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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며칠 전, 지금까지 이론으로만 논의되었던 블랙홀의 존재를 실제로 관측하고 사진까지 찍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그 기사가 나온 날, 뉴스룸에서는 그와 관련된 앵커브리핑이 나왔다. 앵커브리핑의 결론은 먼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한낱 점에 불과한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리 애가 닳고 분노하며 탐욕을 키우는가, 였다. 그 결론도 물론 생각할거리를 던져주지만, 그보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언급했던, 윤동주의 별헤는 밤과, 아이들이 달에 대해 상상했던 그 감성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내겐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무려 오십 년 전에 인간이 달에 첫 발을 내딛고, 불과 며칠 전에는 이론 속에서만 존재했던 블랙홀의 실제를 인간이 관측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엄연한 사실 앞에서 우리가 별과 달, 밤하늘을..

어느푸른저녁 2019.04.16

크리스토프 바타유, 《다다를 수 없는 나라》, 문학동네, 2006.

카트린 수녀는 자신의 생각을 두꺼운 나뭇잎에 적어놓았다. 그녀의 일기는 긴 시와도 같았다. 그 속에서 자신의 새로운 생활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그려놓은 풍경은 더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심지어 몸이 아플 때에도 저녁이면 모닥불 불빛 아래서 베트남에 관한 이야기들을 계..

안드레 애치먼, 『그해, 여름 손님』, 잔, 2018.

안드레 애치먼의 을 읽었다. 영화 의 원작 소설인데 읽고 있자니 어쩔 수 없이 영화 속 장면들이 생각났다. 어떤 장면들은 너무나도 영화와 비슷해서(당연하게도!) 마치 다시 영화를 보고 있는 듯 느껴지기도 했고, 오히려 책 속의 묘사 덕분에 영화 속 장면들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주인공의 심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었을 때와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나중에 보았을 때의 느낌이 분명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엔, 영화 때문에 소설을 읽게 되었으니 당연히 영화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을 것이다. 영화가 아니었다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탈리아의 찬란한 여름 햇살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소설을 읽지 않았거나(소설의 존재를 몰랐거나), 소설만으로는 영화에서 ..

흔해빠진독서 2019.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