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마을에서 경주의 주상절리와 양동마을은 어쩔 수 없이 제주도의 주상절리와 안동의 하회마을을 떠올리게 했으나, 그것은 그곳을 가보기 전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가 본 경주의 주상절리와 양동마을은 경주만의 주상절리와 양동마을이었다. 그 자체로 너무나 충분하여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어느푸른저녁 2019.01.20
기묘한 도시에서 책 읽기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고 웅크리고 앉아 있으니 술을 마신 것처럼 머릿속 어딘가가 천천히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데런의 눈은 앞을 보고 있으면서도 보고 있지 않은 상태가 되었고 다른 감각들도 조금씩 둔해지면서 온몸이 잠과는 다른 기묘한 무력과 둔감상태에 잠겼다.(권여선, 「희박.. 어느푸른저녁 2019.01.06
김연수, 《언젠가, 아마도》, 컬처그라퍼, 2018. 여행에서 두 번 다시란 없으니까. 다시 왔을 때 나는 그때의 그 사람이 아닐 테니까.(31쪽) * 젊었을 때 많이 여행하라는 흔한 말을 뒤집으면, 여행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젊은이라는 말이 된다. 나이가 젊다면 당연히 육체적으로야 여행하기에 수월하겠지만, 여행은 체력만으로 하는 게 아.. 기억할만한지나침 2019.01.03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거창하게 시작하긴 했지만 사실 그 질문에 대한 답 따위는 갖고 있지 않다. 나는 다만 궁금할 뿐이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도 인간으로 분류되지만 도무지 인간이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오늘 감기로 인해 혼몽한 정신으로 일을 하면서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어제 먹었던 약기운이 떨어져서인지 오후부터는 머리도 아프고, 정신이 혼몽해지면서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말을 하긴 하는데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문서에 적힌 글자를 읽기 힘들어서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말이 많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서 나에게 말의 홍수를 쏟아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해하기 힘든 지시와 이해하기 힘든 발상들. 내 직장 상사는 소위 갑질이라고 할만한 말들을 아무 .. 어느푸른저녁 2018.12.28
문라이트 * 이것은 결국 한 흑인 남자의 성장기도, 자신의 성정체성을 자각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될 수 있지만,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한 편의 아프지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흑인 남자의 내면을 따라 흘러간다. 주인공의 말수가 적은 것도 그의 내.. 봄날은간다 2018.12.23
쇼팽과 모차르트 얼마전 JTBC 뉴스룸에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나왔다. 나는 그때 마침 뉴스룸을 보고 있었는데, 조성진이 나와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채널을 돌리고 말았다. 앵커가 그의 연주가 마지막에 준비되어 있다는 말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도대체 이 심리는 무엇인지?). 하루 뒤에 유.. 어느푸른저녁 2018.12.16
우리는 단 한 번만 사랑한다 * 우리는 단 한 번만 사랑한다. 그리고 이 단 한 번의 사랑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까닭은 우리 스스로가 그것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13~14쪽,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문학과지성사, 2001.) * 문득 생각난 듯, 책장 앞에 서서 책들을 훑어본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책을 집어 든다. 그.. 어느푸른저녁 2018.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