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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나는 오래전부터 90년대가 내 '현재'라는 이상한 시간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2024년을 살고 있지만, 90년대로 봤을 때는 미래이므로, 나는 지금 2024년이라는 미래를 살고 있다는 감각. 당시 어렸던 나는 90년대 이후의 내 삶에 대해서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미래에 무엇이 될지, 어떤 모습일지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 현재는 90년대에 뿌리 박힌 채 그 이후의 삶은 그저 이후의 삶일 뿐이라는 생각은 현재의 삶에 묘한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지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 세상에서 마치 유령처럼 살고 있는 것만 같은 것이다! 나는 내가 맞는가?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과 공간이 정말 실재하는 것인가? 나는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 과거의 나는 어느 한순간 ..

흔해빠진독서 2024.04.21

密陽

감기가 채 낫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장시간 운전을 해야 했다. 매제가 새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는 밀양이 목적지였다. 감기도 감기지만 주말엔 반드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야만 하는 내게는 좀 무리인 듯했지만, 아버지와 고모의 부탁에 어쩔 수 없었다. 물론 내 동생의 일이기도 하기에 한 번 가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밀양은 오래전 이창동 감독과 전도연, 송강호 주연의 영화 으로 익숙한 지명이었다. 그 영화는 내게 무척 진지하고도 묵직한 감동을 전해주었기에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밀양에 대해서 그 이상의 것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밀양을 처음으로 다녀왔다. 한마디로 밀양은 제법 큰 시골 같은 느낌이었다. 도시적인 느낌보다는 시골의 오래된 느낌이 강했는데 마냥 시골..

토성의고리 2024.04.21

단상들

* 르누아르의 봄, 이라고 나지막이 읊조려본다. 누군가의 봄에 대해 생각하다가 나의 봄은 어떤가 생각했다. 나에게 봄이란 무엇인가, 얼마나 남았는가 뭐 그런 것들을. 봄이 오자마자 봄의 덧없음을 생각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보인가. 나에게, 너에게, 우리에게 봄이란. 아니, 그저 나의 봄이란.(2024.4.1.) * 박민규의 가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는 분명 그 소설을 읽었는데 도무지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트위터에 올려놓은 소설 속 문장들을 다시 건져내어 읽어보아도 도무지. 나는 그 소설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2024.4.2.) * 참으로 이상한 모임이었다. 우리들은 끊임없이 무슨 이야기를 하였으나 그것들은 겉돌기만 하고 서로에게 가 닿지 못했다. 초대를 한 이는 별 말이 ..

입속의검은잎 2024.04.16

최윤, 《회색 눈사람》, 문학동네, 2017.

어떤 구체적인 소속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어디서 왔는지, 가족은 있는지······ 마치 공중의 전선에 매달려 있다가 어느 날 앞에 나타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가 사라져버리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12쪽, 「회색 눈사람」) * 닥쳐올 파국을 충분히 감지하고 있으면서도 순간적인 방임인 양 어떤 거역할 수 없는 질서에 게으르게 몸을 맡겨버리면서 사람들은 삶의 나침반을 바꾸어버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 역시 한 선택이다.(18쪽, 「회색 눈사람」) * 아프게 사라진 모든 사람은 그를 알던 이들의 마음에 상처와도 같은 작은 빛을 남긴다.(55쪽, 「회색 눈사람」) * 사람들은 그에 대해 말할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에 대한 충분하고도 만족스러운 어떤 자료도 없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현상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엉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뒤엉킨 목소리들이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왁자지껄한 고깃집에서 누군가는 취해 소리를 질렀고, 누군가는 가족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었을 어떤 이의 부고 소식을 듣고도 우리는 고기를 입에 넣었고, 술을 마셨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그 소식의 당사자 또한 전화를 받고 묵묵히 밥을 먹다가 어느 순간 아무렇지 않게,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는 지금 죽음과 너무 멀리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죽음이라는 현상은 바로 지금 우리들의 식탁 위에 와있지 않은가! 나는 갑자기 모든 것들이 연극처럼 느껴졌다. 비극이 아니라 희극 말이다.

어느푸른저녁 2024.04.09

당연하고도 힘차게, 쓸쓸한 자는

이 책은 제발트가 인상 깊게(본인에게 깊은 영향을 준) 읽거나 본 여섯 명의 작가들(소설가이거나 화가)에 대한 글이다. 요한 페터 헤벨, 장-자크 루소, 에두아르트 프리드리히 뫼리케, 고트프리트 켈러, 로베르트 발저, 얀 페터 트리프가 그들이다. 내가 한 번이라도 이름을 들어보거나 읽었던 책의 저자라고 한다면 고작 장-자크 루소와 로베르트 발저뿐이다. 그래서일까? 다른 작가들보다도 그 둘에 관해서 쓴 글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로베르트 발저는 나 역시 흠모해 마지않는 작가여서 제발트가 그에 대한 애정을 품어왔다고 고백하는 대목에서는 마치 운명의 이상형을 만난 것 같은 친밀함을 느꼈다. 이로 인해 나는 제발트뿐만 아니라 발저 역시 더욱 특별한 존재로 느끼게 되었다. 배수아는 '제발디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

흔해빠진독서 2024.04.07

꽃의 부름

어차피 주말이라고 집에서 나오지는 않을 거니까 오늘 벚꽃을 봐야 해! 일터에서 점심을 먹고 난 뒤 동료들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사무실 근처에 있는, 작은 강이 흐르는 둔치에 벚꽃이 활짝 핀 것이다. 다음 주면 벌써 진다고 아쉬워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나는 동료들과 함께 그 길을 걸었다.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먹거리를 파는 리어카가 부쩍 많이 보였다. 둔치에는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꽃의 부름에 응답한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우리들은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도록 천천히 걸으면서 만개한 벚꽃을 감상했다. 원래부터 사진을 잘 찍지는 못하지만, 벚꽃 사진은 유난히 더 그런 것 같다. 그냥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그 느낌을 어떻게든 사진에 담아보고 싶어 이리저리 찍어 보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어떤 아름다움은 사진으로..

어느푸른저녁 2024.04.05

멀리 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은 모두 멀리 있다. 언제나 그랬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은 기다리는 것. 기다린다는 생각 없이, 마치 잊었다는 듯이. 누군가는 절실함이 없다고 하리라. 그렇게 보고 싶으면 아무리 멀더라도 직접 가면 되지 않느냐고. 맞는 말이다. 직접 가서 볼 만큼의 절실함이 없다는 건, 내가 그것을 절실히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은 뜻일지도 모른다. 헌데 정말 그런가? 나는 그것이 늘 의문이었다. 그저 좋아함의 정도가 다른 게 아닐까? 어쨌건 나는 기다린다는 의식 없이 기다릴 것이고, 거의 잊고 있다가 문득 그것을 떠올릴 것이다. 나는 딱 그만큼의 좋아함이 좋은 것인지도.

어느푸른저녁 2024.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