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83

여행자

바보같이 굴거나 어쩔 줄을 모르거나 혹은 뭔가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인생을 살면서 그런 불운한 경우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내면의 낙천적인 빛을 발휘하여 그것이 불행이 아니라 일종의 여행병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이 세계의 여행자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우리는 무와 무 사이를 혹은 전체와 전체 사이를 여행하고 있다. 우리는 어차피 길 위에 있는 것이니 도중에 만나게 되는 이런저런 불편, 혹은 고르지 않은 길바닥에 대해서 너무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 위로를 주는 요소는 정말로 많다! 맑고 청명하며, 언제 봐도 구름 한두 점이 흘러가고 있는 저 멀리 푸른 하늘, 숲 속에서는 단단한 나뭇가지를 흔들고 도시에서는 5, 6층에 널린 빨래들을 펄럭이게 하는 가벼운 바람, 날이 따뜻하면 따뜻함이,..

불안의서(書) 2017.06.03

내 인생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

내 인생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는, 음지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은밀한 형태이기는 하나, 그 무엇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느낄 수가 없다는 점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랑하고 미워할 줄 알며, 다른 사람들처럼 두려움을 느끼거나 감동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사랑도 미움도, 나의 두려움도 감동도, 원래 모습과는 다르다. 어떤 특정 성분이 결여되었거나, 혹은 애초에 그것들에 속하지 않는 어떤 특정 성분이 들어가 있다. 어느 모로 보나 틀림없이 뭔가 다르고, 실제로 내가 가진 느낌 역시 삶 자체와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않는다.(714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 내가 종종 느끼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이와 비슷할까. 나와 내 삶, 내 삶과 나를 둘러싼 세계..

불안의서(書) 2017.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