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81

알 수 없으므로 나는 고통을 느낀다

나는 매 순간 무엇인지 모를 힘에 떠밀려 항시 다른 것을 생각하게 된다. 마치 몽롱한 환각에 빠진 것처럼,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 한번도 되어보지 못한 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찰싹거리는 연못의 물소리와 같은 존재하지 않는 농장의 소리에 뒤섞여버린다. … 나는 느끼려고 애를 쓰지만, 어떻게 하면 느낄 수 있는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 나는 나 자신의 그림자가 되어버렸고, 나는 내 존재를 그림자에 내어주었다. …… 나는 나의 그림자가 아닌 나의 실체를 악마에게 팔아넘겼다. 나는 고통스럽지 않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나는 살아 있는가 아니면 그저 살아 있는 척하는 것인가? 나는 잠들어 있는가 아니면 깨어 있는가?(774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불안의서(書) 2017.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