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 이정록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 질투는나의힘 2009.01.08
비굴 레시피 - 안현미 비굴 레시피 안현미 재료 비굴 24개 / 대파 1대 / 마늘 4알 눈물 1큰술 / 미증유의 시간 24h 만드는 법 1. 비굴을 흐르는 물에 얼른 흔들어 씻어낸다. 2. 찌그러진 냄비에 대파, 마늘, 눈물, 미증유의 시간을 붓고 팔팔 끓인다 3. 비굴이 끓어서 국물에 비굴 맛이 우러나고 비굴이 탱글탱글하게 익으면 먹는다 .. 질투는나의힘 2008.11.29
누런 나무에게 - 이성복 누런 나무에게 이성복 인제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니어야 하는데, 자꾸만 이게 되는 그런 기막힌 경험을 이 나무들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왜 잎은 매냥 똑같은 잎이고, 그런데도 열매는 왜 매냥 똑같은 열매인지 마흔 지나고, 쉰 지나고 허연 살비듬 눈부시게 날리는 예순을 코앞에 두고도 나무들.. 질투는나의힘 2008.10.05
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 거짓말을 타전하다 안현미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치의 방과 한 달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을 만나면 .. 질투는나의힘 2008.09.07
어두워진다는 것 - 나희덕 어두워진다는 것 나희덕 5시 44분의 방이 5시 45분의 방에게 누워 있는 나를 넘겨주는 것 슬픈 집 한채를 들여다보듯 몸을 비추던 햇살이 불현듯 그 온기를 거두어가는 것 멀리서 수원은사시나무 한그루가 쓰러지고 나무 껍질이 시들기 시작하는 것 시든 손등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 5시 45분에서 .. 질투는나의힘 2008.05.11
물고기 - 함민복 물고기 - 함민복 부드러운 물 딱딱한 뼈 어찌 옆으로 누운 나무를 몸 속에 키우느냐 뼈나무가 네 모양이구나 비늘 잎새 참 가지런하다 물살에 흔들리는 네 몸 전체가 물 속 또 하나의 잎새구나 - 시집 <말랑말랑한 힘> 중에서 질투는나의힘 2007.06.06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함형수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청년화가 L을 위하여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碑)돌은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질투는나의힘 2007.04.28
봄 저녁 - 장석남 봄 저녁 - 장석남 모과나무에 깃들이는 봄 저녁 봄 저녁에 나는 이마를 떨어뜨리며 섰는 목련나무에 깃들여보기도 하고 시냇물의 말[言]을 삭히고 있는 여울목을 가슴에 만들어보기도 하다가 이도저도 다 힘에 부치는 봄 저녁에는 사다리를 만들어 모과나무에 올라가 마지막 햇빛에 깃들여 이렇게, 이.. 질투는나의힘 2007.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