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나는 고통 자체보다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그 의식을 더욱 고통스러워했다

시월의숲 2022. 6. 18. 00:32

"내 느낌의 강도는 내가 느끼고 있다는 의식의 강도보다 항상 더 약했다. 나는 고통 자체보다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그 의식을 더욱 고통스러워했다."(184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중에서)

 

문득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펼친다. 그렇게 우연히 펼쳐진 페이지를 읽는다. 읽자마자 저 문장을 발견한다. 나는 오래전에 이 책을 읽었으나 오늘 처음으로 읽는 것 같다. <불안의 서>는 참으로 이상한 책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매번 다른 문장들이 말을 건넨다. 나는 그렇게 매번 다른 문장들에 사로잡힌다. 페소아라는 '마력'에 사로잡힌다. 결코 과거가 될 수 없는 페소아라는 이름에.

 

"나는 내 것이 아닌 인상으로 살아간다. 나는 체념을 남용하는 자이고,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매번 다른 이가 된다."(184쪽)

 

그렇게 수많은 이름들로 수없이 탄생했던 페소아와 페소아들을,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나는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히 읽게 될 것임을. 마치 매번 새로운 것을 대하듯,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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