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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 내가 들어간 그곳은 화장실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보이는 창문으로 빼곡히 들어찬 나무들이 보였고, 그 사이로 시월의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 햇살이 눈부시게 빛났으나, 그것은 빼곡히 들어찬 나무들이 아니었다면, 그 나뭇가지들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아니었다면 큰 감흥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나는 무엇에 이끌리듯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사진으로 보는 느낌은, 당시 그 자리에서 내가 받았던 느낌의 삼분의 일도 채 되지 않는다. 창문의 검은 틀이 커다란 캔버스가 되었고, 창밖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저렇게 멋진 창문이 있는 화장실을 본 적이 없다. 우연히 들어간 화장실이 미술관이 되어버린 희귀한 경험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어느푸른저녁 2015.10.18

각자의 방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아니, 대학교 때까지 내 방이 없었습니다. 나는 늘 나만의 방을 꿈꿨습니다. 그 당시 쓴 일기에도 내 방에 대한 열망을 무수히 기록했었지요. 그렇게 말하자 그는, 그 당시에는 다들 그렇지 않았나요? 그때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의 방을 가지지 못한 채, 자신의 형제나 부모들과 함께 한 방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정말 그런지 알지도 못한 채, 아, 그랬던가요, 그 시절에는 다들 그렇게 한 방에서 형제들과 부모, 혹은 조부모들과 함께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숙제를 하고 일기를 썼던가요, 그랬던가요, 그 말만 반복해서 했다. 정말 그랬나. 그 시절에는 다들. 그 시절에 다들 그랬다고 하더라도 나는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을 우물거렸다. 무언가..

어느푸른저녁 2015.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