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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으며,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고,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지극히 사교적인 성격인데, 지극히 부정적인 방식으로 그렇다. 나는 유화적인 편이다. 그렇지만 내 원래 성격보다도 더욱 유화적일 수는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나는 모든 존재들에게 시각적으로 호감을 느끼고 이성으로 다정함을 느낀다. 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아니..

불안의서(書) 2015.10.04

꿈의 흔적

우리가 진실이라고, 옳다고 여기는 많은 일들이 우리들 꿈의 흔적일 뿐이고, 잠에 취한 우리의 이성이 생각 없이 흔들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에 불과하구나! 도대체 그 누가 진실이 무엇인지,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가? 우리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많은 것들이,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일시적인 가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속해 있다고 망상하는 많은 것들이, 본성상 우리와는 아주 판이하며, 우리는 그들의 단순한 거울, 투명한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365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 소리 소문없이 가을이 왔다. 어제의 여름은 이제 꿈의 흔적이 되어버렸다. 한 때 뜨거웠던 것들이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일시적인 가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계절은 ..

불안의서(書) 2015.09.17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창비, 2014.

어쩌면,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만약 내가 소설이라고 불리울만한 무언가를 쓴다면, 바로 이런 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말은, 이 소설이 결코 만만하게 보였다거나, 쉽게 읽혔기 때문은 아니다. 이 소설만의 분위기, 내용, 스타일이 어쩌면 내가 쓸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지점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이승우의 『생의 이면』이라는 소설을 읽고나서도 했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격렬한 감정을 느꼈는데, 그것은 소설 속 등장하는 인물들의 설정이 내 과거의 상황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소설을 읽고 쓴 감상문에서, 내가 그 소설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내 삶이 조금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드러내기도 했었..

흔해빠진독서 2015.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