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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산책

낮이었는데도 밤 같았다. 아버지와 나는 냇가를 따라서 걸었다. 산책을 하려고 나온 길이었는데, 하늘은 구름에 가려 어두웠고, 냇가 주위로 공원 조성을 위해 파헤쳐진 흙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으며,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냇가 주위로는 온통 시커먼 시멘트 벽이 육중하게 버티고 있어서, 쌀쌀한 날씨와 어둠, 뿌연 안개와 더불어 한층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침부터 낀 안개와 구름이 오후가 되어도 걷히지 않아서 애초에 우울한 기분을 전환하려고 나온 것은 아니었으나, 막상 냇가를 걷고 있자니 더 우울해지는 기분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 기분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는데, 햇살 가득한 거리를 걸을 때와는 다른 느낌을 안겨주었기 때문이었다. 산책이 늘 화창한 햇살 속을 걷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왜 좋은지 ..

어느푸른저녁 2015.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