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된 시간 속의 책들 나는 지금, 언젠가는 읽으리라 생각하며 샀던 책들이 꼽혀 있는 책장을 보고 있다. 언젠가는 읽으리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읽지 못한 책들, 아니 읽지 않은 책들을 바라보며, 내가 저 책을 언제 샀는지 기억해내려고 했지만, 결국 기억해내지 못했다. 읽고 싶은 책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사.. 어느푸른저녁 2015.09.05
당신의 기억 그때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내 졸업식 이야기를 하게 된거지? 아, 그래, 그때 우리는 K가 직장을 다니면서 뒤늦게 대학교를 졸업한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K는 한 학기를 남기고 휴학을 한 후, 소방관 시험에 합격해서 지금까지 일을 하다가 이제서야 졸업을 한 친구였다. 같은 대학의 동.. 어느푸른저녁 2015.09.04
마법사들 중 하나의 이름을 죽어가는 보랏빛 속에서 하루가 흐르며 저물어간다. 그 누구도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으리라. 내가 누구였는지 아는 사람도 없으리라. 나는 알려지지 않은 어느 미지의 산에서 미지의 계곡으로 내려왔다. 내 발자국은 저녁이 느리게 도래할 무렵 숲 속 개활지로 나 있었다. 내가 사랑.. 불안의서(書) 2015.08.31
무언가를 조금씩 쓴다는 것 무언가를 조금씩 쓴다는 것.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쓴다는 것이 반드시 종이에 연필을 사용하여 문자를 기재한다는 일차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무엇에든 어디에든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나는 지금도 쓰고 있다. 엄밀히 말해 이것은 키보드를 치는 행위이지만, 키보드로 치는 것이 .. 어느푸른저녁 2015.08.30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난다, 2013.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나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12쪽) * 드라마가 역사를 앞에 내세울 때는 그 역사.. 기억할만한지나침 2015.08.25
어떤 폭력 우리가 왜 만났는지 알 수 없었다. 한 친구는, 적극적으로 우리들의 만남을 이끌고 주도하였지만,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인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인지(정작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 알지도 못한채) 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눈치였다. 혹은 누군가 정해놓기라도 한듯, 이상적.. 어느푸른저녁 2015.08.23
어떤 날 * 언제인지 모를, 그리 멀지않은 어떤 날에, 나는 누군가의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거기 빛과 어둠을 머금은 구름이 하늘을 꽉 메운채 펼쳐져 있었다. 나는 무엇에 이끌리듯 자연스레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 셧터를 눌렀다. 그때 내가 집으로 가.. 어느푸른저녁 2015.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