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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되는

한결같은 단조로움, 지루하고 똑같은 일상, 어제와 오늘의 결코 다르지 않음, 내가 살아 있는 한 이것은 나를 영원히 떠나지 않으리라. 그 덕분에 내 영혼은 생생하며, 작은 것들이 주는 자극을 크게 느낀다. 우연히 눈앞을 날아가는 파리 한 마리에 즐거워하고, 어느 거리에선가 간간히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흥겹고, 사무실 마감시간이 다가올 때의 엄청난 해방감, 그리고 휴일이면 끝없는 평안과 휴식을 만끽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되는 나 자신을 상상할 수 있다. 내가 실제로 뭔가 대단한 존재였다면 나는 그것을 상상할 수가 없으리라. 보조회계원은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는 꿈을 꾼다. 하지만 영국 왕은 그런 꿈을 꿀 수 없다. 왕이 되고자 하는 꿈의 가능성을, 영국 왕이라는 자리가 이미 차지해버렸..

불안의서(書) 2015.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