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지나 가을, 바람이 제법 찬 걸 보니 이제서야 가을이 온 듯하다. 9월인데도 불구하고 여름 날씨처럼 더워서 투덜거렸었는데 이제서야 한 숨 돌릴 수 있겠다. 하지만 기후의 변화로 말미암아 가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니, 가을이 왔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 바로 겨울이 올지도 모를 노릇이다. 아, 내가 좋아하는 것.. 어느푸른저녁 2008.09.26
소유 어느 것도 영원히 내것이 될 수 없다는 진실을 알면서도 나는 왜 자꾸만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것일까? 어떡하다보니 책과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공짜로 책을 몇 권 얻게 되었는데, 자꾸만 책을 더 탐하게 되는 마음이 생긴다. 오히려 대상이 돈이었다면 쉽사리 단.. 어느푸른저녁 2008.09.21
귀향 대략 삼 주 만에 집에 오는 것 같다. 아니, 사 주 만인가?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오는 길이 무척이나 익숙하면서도 그 익숙함에서 오는 묘한 거리감 때문에 숨을 깊이 들이마셔야만 했다. 고작 한 달도 안 되었는데, 이건 뭘 의미하는 건지. 집에 오니 다들 얼굴이 좋아졌다고 한다. 신경 쓸 일 없는 곳에.. 어느푸른저녁 2008.09.12
윤대녕, 『제비를 기르다』, 창비, 2007. 오랜만에 윤대녕의 소설을 읽는다. 이번에 읽은 그의 소설은 여타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재기발랄함이랄지, 유쾌함, 실험성 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우물 같은 잔잔함과 깊이를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총 여덟 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하나같이 가족들과의 관계와 .. 흔해빠진독서 2008.09.07
윤대녕, 《제비를 기르다》, 창비, 2007.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갖는 기대와 희망의 대부분은 알고 보면 타인에게 애써 요구하고 있는 것들이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상대를 객관적인 타인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흔히 부모라고 하는 사람들이 또다른 타인인 자식들을 위해 출가를 시킨 뒤에도 다 늙어서까지 한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보면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적어도 이미 윤리적 사명은 완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것을 일방적으로 의무로 평가하고 때로 가혹하게 폄하하고 더한 요구를 하게 될 때 그들 몫의 설자리는 그만큼 옹색하고 누추해지기 마련이다. - 윤대녕, 중에서 기억할만한지나침 2008.09.07
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 거짓말을 타전하다 안현미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치의 방과 한 달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을 만나면 .. 질투는나의힘 2008.09.07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일교차가 점점 커지는 계절이다. 밤에는 서늘하던 기운이 오후가 되어감에 따라 더워진다. 바람은 서늘함을 품고 있지만 햇볕은 아직 따갑다. 비로소 가을의 문턱에 서 있음을 느낀다. 어제는 출장을 다녀왔다. 하늘을 가리며 길께 뻗어있는 소나무가 제법 빼곡히 들어찬 곳이었다. 오후.. 어느푸른저녁 2008.09.06
어쩔 수 없는 일들 어제는 오랜 시간을 들여 미뤄둔 빨래를 했다. 주인집 할머니의 세탁기를 쓰려고 했지만(할머니께서 허락해 주셨다) 며칠째 서울 아들네에 가셔서 돌아오지 않으셨다. 물론 방문은 굳게 잠궈 두고서. 속옷이나 양말, 수건 같은 것들은, 약간의 귀찮음만 감수한다면, 손수 빨아도 별 무리가 없지만, 부.. 어느푸른저녁 2008.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