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122

그건 너무 페어플레이 같은데요, 여러분?

주말 내내 《더 글로리》를 정주행 했다. 학교폭력의 묘사가 너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며 과시적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실제 현실은 그보다 더하다는 기사를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은 그보다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즌2에서 본격적인 복수가 시작될 모양이다. 시즌1은 복수를 위한 사전준비 정도로 보인다. 어떤 식의 복수가 될지 지켜봐야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가해자는 역시 자신이 가해자인 줄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면 알고도 그걸 즐기는 것이거나. 극 중 동은(송혜교)의 독백 중 이런 것이 있었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파상은 파상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 글쎄... 그건 너무 페어플레이 같은데요, 여러분.' 당한 만큼 갚아주지 않고, 당한 것보다 더 갚아주겠다는 의지..

봄날은간다 2023.01.15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일요일 아침 조조로 영화를 보았다. 러닝 타임이 무려 두 시간 사십 분이다. 나는 세 시간 가까이 되는 영화의 러닝 타임이 내게 어떻게 다가올까 궁금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이 영화의 소개나 리뷰, 평점 등을 전혀 보지 않았다. 그러다 영화 시작하기 전에 쿠키 영상이 몇 개나 있나 싶어 찾아보다가 평점과 짤막한 리뷰들을 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평이 많았다. 나는 예고편만을 보고 무척 기대를 하고 왔는데, 극과 극의 평점을 보다 보니 머리가 다 어질어질했다. 그러니까 재밌다고 한 사람들의 평점은 거의 10점에 가깝고, 재미없다고 한 사람들의 평점은 거의 1점에 가까웠다. 1과 10 사이에서 나는 과연 어떤 점수를 줄 수 있을지 스스로 ..

봄날은간다 2022.11.13

동사서독 리덕스

"잊으려 할수록 기억은 선명히 살아난다. 누가 그랬다. 원하는 걸 가질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결코 잊지 않는 것이라고." - 왕가위, 『동사서독』 중에서 구약봉(장국영)의 대사 *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다. 늘 그렇듯, 언젠가는 보게 되겠지, 했다. 그리하여, 이제야, 드디어,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왜 이 영화가 계속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같은 감독의 나 이안 감독의 처럼 화려하고 감각적이며 잘 짜인 무협 영화 한 편을 보게 되리라는 기대를 했는지도 모른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이 영화가 기존의 무협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기대한다면 반드시 실망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에 나오는 유수의 배우들과 예고편에서 느껴지는 어떤 느낌 때문..

봄날은간다 2022.09.26

당신들 모두 같은 생각인가요?(영화, 『비상선언』)

이 영화는 테러리스트와 인질의 관계 혹은 테러의 이유 같은 것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테러 이후 남겨진 사람들(테러를 당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혹은 테러를 당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갈등과 서로 간의 이기심(이타심을 빙자한)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 이 영화는 테러리스트의 응징과 승객들을 구출하는 영웅 서사가 중심이 되는 액션 영화가 아니라 테러를 통해 촉발되는 인간들의 이기심에 관한 영화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영화를 설명하기에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너무 빈약하거나 때로는 너무 넘친다. 인간의 이기심과 희생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너무 단선적으로 그리고 있어서 빈약하고, 그것을 둘러싼 드라마가 너무 감정적―소위 신파적―이라서 과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

봄날은간다 2022.08.09

외계+인 1부

를 보았다. 나는 대체적으로 책이나 영화 같은 것을 볼 때 되도록이면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려고 하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몰라도(아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요즘 이 영화에 쏟아지는 이상하리만치 잔혹한 비판은, 영화를 보고 온 지금 내겐 의아함을 넘어서 이 영화를 음해하려는 모종의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했다. 너무나도 별로라는 리뷰를 많이 보았고, 보고 온 사람들의 반응도 시큰둥하여 나 역시 별 기대 없이 영화를 보러 갔다. 그렇게 수많은 악평을 보고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감독의 전작에 대한 믿음도 어느 정도 있었다(최동훈 감독의 전작들에 내가 그리 열광하지 않았음에도 불구..

봄날은간다 2022.07.26

헤어질 결심

'마침내' 을 보았다. 처음엔 이포의 안개처럼 몽환적인 영화인가 싶었는데, 마지막 장면까지 보고나니 너무나 '꼿꼿한' 영화였다. 희미한 안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꼿꼿한 서래(탕웨이)의 마지막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해준(박해일)이 서래를 좋아한 이유처럼 나는 이 영화가 좋아졌다.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그것은 이 영화가 사람의 '심장'이 아니라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란, 버지이나 울프의 말처럼, '우리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전적으로 의존하는, 참으로 신비로운 기관'이 아닌가. 안갯속처럼 잔상을 쉬 알 수 없는 영화였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다. 때로 어떤 헤어질 결심은 깊이 사랑했다는 사실의 반증이..

봄날은간다 2022.07.10

범죄도시2

며칠 전 아버지가 갑자기 내게 물었다. "요즘 범죄도시2가 그렇게 재밌다면서? 관객이 천만 명 넘었다고 하던데." "천만이 넘었다고요? 요즘 다들 그 영화 이야기를 많이 하긴 하던데... 천만이 넘을 줄은 몰랐네요." 그래서 아버지와 나는 오늘 를 보았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 테지만, 어쨌거나 영화는 내 개인적인 취향과는 별개로 일단 재미가 있었다. 하긴 재미가 없었다면 천 만이라는 관객이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도 오랜만에 재미있는 영화를 봤다며 좋아하셨다. 영화를 보고 나니 왜 이 영화가 천만이나 넘는 관객을 동원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재미라는 건 참으로 주관적인 느낌이므로, 당연한 말이지만, 저마다 그것을 느끼는 부분이 다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영화를 보기 전에 ..

봄날은간다 2022.06.19

윤희에게

너는 네가 부끄럽지 않다고 했지. 나도 더 이상 내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 언젠가 내 딸한테 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용기를 내고 싶어. 나도 용기를 낼 수 있을 거야. 추신 - 나도 네 꿈을 꿔. - 영화 중에서 * 마치 잘 짜인 단편소설을 한 편 읽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오래전에 본 영화 도 생각났다.(영화 속 배경 도시가 오타루인 데다가 '편지'가 중요한 매개로 등장한다) 감독도 아마 그 영화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이 영화를 보고 눈과 편지,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꿈을 꾸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에 대해서. 가족은 서로에게 족쇄와 억압으로 작용하기도 하지..

봄날은간다 2022.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