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검은잎 50

단상들

*얼마 전에 미술관에 갔다가 '미술관 옆 화장실'이라고 적힌 팻말을 보았다. 그걸보고 ‘미술관 옆 동물원’을 떠올리면 옛날 사람이려나? 남자 주인공이 굉장히 무례한 캐릭터였던 것 같은데… 심은하가 쓰던 노란 우산이 떠오른다. 스틸 사진 속 배우들은 모두 풋풋하다.(20240516)  * 새 책을 사는 것도 좋고,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은데, 일단 지금 읽고 있는 책을 계속 읽는 게 좋지 않을까?(20240518)  * 고향은 좋고 싫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고향은 그냥 고향인 것이다. 고향이 좋냐는 물음에 나는 늘 대답을 망설이곤 했다. 그것은 내 고향이 싫어서도 아니고 좋아서도 아니었다. 고향에 대해서라면 단정적으로 대답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다.(20240518)  * 종일 집에..

입속의검은잎 2024.06.02

단상들

* 2년 전 오월, 나는 코로나에 걸려 격리중이었구나. 격리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그때도 5월 5일이 입하였고 2024년인 올해도 5월 5일이 입하다. 격리도, 오월도, 입하도 이래저래 다 믿기지 않는다.  거리의 이팝나무는 올해도 눈부시고.(20240502)  * 박상영의 을 막 다 읽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의 찌질함에 혀를 차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던 것은, 슬퍼서라기보다 오늘 유난히 많이 날리던 송홧가루가 때마침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20240502)  * 눈으로 먼저 알게 되는 꽃이 있고, 향기로 먼저 알게 되는 꽃이 있다. 전자의 대표로는 벚꽃을, 후자의 대표로는 아카시아를 들 수 있지 않을까. 밤 산책을 위해 집을 나서는데 달콤한 향기의 급습에 순간 걸음을 멈..

입속의검은잎 2024.05.25

단상들

* 감기 때문에 멍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멍한 사람이었는지도.(20240418) * 흔히 핑계 대지 말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삶이란 어쩌면 핑계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나는 지금 마음에 들지 않는 내 삶에 핑계를 대고 싶은 걸까.(20240418) * 오늘은 하루종일 빗속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우의를 입은 채였지만 비는 귀찮게 피부에 계속 와닿았다. 저녁에는 와인을 종류별로 이것저것 마셨다. 비는 계속 내렸고, 매번 불렀던 대리기사는 갑자기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비와 술에 절여지고 구겨진 기분이란 딱 이런 것이로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든 하고 싶다는 뜻이겠다. 진정 하고 싶은 말은 하지 않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은 끝끝내 해버리는 아이러니라니.(2024..

입속의검은잎 2024.05.04

단상들

* 르누아르의 봄, 이라고 나지막이 읊조려본다. 누군가의 봄에 대해 생각하다가 나의 봄은 어떤가 생각했다. 나에게 봄이란 무엇인가, 얼마나 남았는가 뭐 그런 것들을. 봄이 오자마자 봄의 덧없음을 생각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보인가. 나에게, 너에게, 우리에게 봄이란. 아니, 그저 나의 봄이란.(2024.4.1.) * 박민규의 가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는 분명 그 소설을 읽었는데 도무지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트위터에 올려놓은 소설 속 문장들을 다시 건져내어 읽어보아도 도무지. 나는 그 소설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2024.4.2.) * 참으로 이상한 모임이었다. 우리들은 끊임없이 무슨 이야기를 하였으나 그것들은 겉돌기만 하고 서로에게 가 닿지 못했다. 초대를 한 이는 별 말이 ..

입속의검은잎 2024.04.16

단상들

* 요 며칠 나를 보는 사람마다 놀라면서,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요?"라고 말한다. 나는, "글쎄요... 잠을 많이 못 자서 그런가..."라고 대답한다. 거울 속에는 내가 있지만 내가 아닌 것만 같다. 눈 아래로 다크서클이 길게 내려와 있다.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20240313) * 인간의 몸은 슬픈 것이라는 걸. 오목한 곳, 부드러운 곳, 상처 입기 쉬운 곳으로 가득한 인간의 몸은, 팔뚝은, 겨드랑이는, 가슴은, 샅은. 누군가를 껴안도록, 껴안고 싶어 지도록 태어난 그 몸은. - 한강, 《희랍어 시간》 중에서 어디 슬픈 것이 인간의 몸뿐이겠니. 나는 모든 것이, 심지어 눈부신 햇살과 푸른 바다와 시원한 바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맺는 관계와 그에 파생되..

입속의검은잎 2024.04.01

단상들

* 하늘이 깨질 것처럼, 지붕을 뚫을 것처럼 그렇게 격정적인 비가 아니라, 얼핏 보면 오는지도 모르는, 입술을 꽉 깨문 채 울음을 참고 있는,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눈물 같은, 그런 비에 대하여.(20240219) * 오늘 퇴근길의 느낌은 여느 때와 사뭇 달랐다. 내가 차를 운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차가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저절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얼마 전에 교체한 타이어의 문제는 아닐 테고... 오늘 내리는 비에는 내가 알 수 없는 성분이라도 들어 있었던 걸까?(20240219) * 피곤한데 맥주를 한 잔 마시니 피곤이 두 배로 밀려오면서 몸을 가누지를 못하겠다. 자면 그만이지만 지금 시간에 자는 건 왠지 억울하고... 그저 몽롱한 상태로 앉아 있다.(202402..

입속의검은잎 2024.03.13

단상들

* '이월의 첫날, 봄비처럼 겨울비 내린다,라고 쓰니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진다. 겨울에 내리는 비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라고, 2013년 2월 1일에 나는 썼다. 오늘은 2024년 2월 1일이다. 곧 있으면 2월 2일이 되겠지. 매 순간이 '작별들 순간들'이다.(20240201) * 내 무심함으로 인해 모든 일들이 망가져 가는 것을, 나는 그저 허허 웃으며 바라보고만 있다.(20240203) * 요즘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조금씩, 확실히 무너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느낀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는 해준에게 붕괴되기 이전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우리 삶 자체가 이미 돌이킬 수..

입속의검은잎 2024.03.01

단상들

* 갑자기 열이 나서 타이레놀을 하나 먹었더니 좀 나아졌다. 그리 춥지 않은 날씨인데... 감기가 오려는 것일까? 어쩐지 호되게 아플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이건 분명 날씨 때문은 아니리라.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과 이해받지 못하는 마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마음, 그 마음 때문일 것이다.(20240121) * 전혀 효과가 없는 약을 먹은 기분이다. 그러니까 어떤 약을 먹어야 할지 알 수 없다. 아프긴 아픈데 도무지 어디가 아픈지 모르겠다. 체했으면 소화제를, 목이 아프면 목감기 약을,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으면 된다지만, 어쩐지 그게 아닌 것 같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게 몸살이라는 거란다." (20240123) * 저녁 식..

입속의검은잎 2024.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