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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들

*자신이 어느 조직에서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타인에게 얼마나 오만해질 수 있는가. 무심히 흘러나오는 오만과 무시의 언어들. 그들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물론 나만의 자격지심이길 나는 바란다.(20240701)  * 오늘 하루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하루가 일주일 같다. 허나, 집에 왔으니 다른 생각을 해야지. 일터에서의 일은 일터에서 고민하고. 퇴근하고 와서까지 일터에서의 일을 고민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말이다.(20240701)  * 일주일이든 며칠이든, 주기적으로 청소를 하는 게 중요하구나. 저번 주말에는 일하러 나가기도 했고, 몸과 마음이 지쳐서 청소를 안 했더니, 방바닥에 머리카락과 먼지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눈 질끈 감고 주말이 오기를 기다려야지.(20240703)  *..

입속의검은잎 2024.07.16

휴가는 다녀오셨어요?

"여름휴가는 다녀오셨어요?" 나는 그때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고 있었다. 원장 선생님의 그 말에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나는 아직 다녀오지 않았고, 다녀올 계획도 없었기에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때 내가 먼저 떠오른 생각은, 가족들이 언제 시간이 되는가,였다. 그러니까 나는 휴가라는 것을 늘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내 머뭇거림을 알았는지, 미용실 원장 선생님은 뒤이어 말했다. "가족들과 보내는 휴가 말고 자신만을 위한 휴가 말이에요." 나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고, 이내 멍한 기분이 들었다. 휴가라는 것이 가족들하고만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그 자명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아... 나만의 휴가...' 나는 한동..

어느푸른저녁 2024.07.15

돌이킬 수 없는 예감

열일곱 살의 나를 떠올린다. 더 멋진 반항을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때의 나는 학교를 조퇴하고 구립 도서관에 갔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서가를 돌아다니다 당시 유행하던 젊은 시인의 시집 한 권을 우연히 꺼내 든다. 수록된 첫 번째 시를 읽는다. 전율한다. 두 번째 시를 읽는다. 다시 전율한다. 도서관의 큰 창으로 오후의 햇살이 쏟아지고 ······ 무언가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 그 순간 나는 다른 것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이 전율의 기억을 죽기 전까지 잊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 그날 저녁 집에 돌아가 펜을 들고 시인지 뭔지 그 비슷한 글을 쓰려고 시도해 볼 것이라는 예감, 언젠가 나의 시집 역시 이 도서관 책장 한구석에 꽂혀 있으리라는 예감, 그러니까 ······ ..

어느푸른저녁 2024.07.13

"질투는 썩는 것처럼 끔찍한 감정이지. 속을 다 꼬고 뒤집어 놓거든. 그게 얼마나 아픈지 난 알아. 인생을 쉽게 사는 사람을 보면 그런 감정이 느껴지거든. 왜냐면 사실... 난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 - 타이 웨스트 감독, 영화 《펄》 중에서 * 공포영화가 보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들자 최근에 공포영화를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무언가에 집중할 수 없는 날들이지만, 그래서 더욱 공포영화여야만 했다. 영화 속 공포로 현실에서의 내 정체 모를 두려움을 누르고 싶었다. 잠시나마 잊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타이 웨스트 감독의 이라는 영화였다. 제대로 된 선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가 공포스럽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다만 내가 원한 공포는 보다 날이 서고, 감각적이며, 잔인해야만 했는데, 이..

봄날은간다 2024.07.08

유디트 헤르만, 《레티파크》, 마라카스, 2023.

평범한 동시에 낯선 삶의 광경은, 내가 기억하기로, 『레티파크』 속 이야기들에 영향을 주었다. 의식한 것은 것은 아니지만 무의식적으로. 다채롭고 수수께끼 같은 의미가 실린 타인들의 일상이 말이다. 당신이 글을 쓰고 있는 장소가 글에 자취를 남기고, 그 자취는 나중에야, 여러 해가 지난 후에야 눈에 띈다, 늘 그렇다.(7~8쪽, '레티파크에 대하여' 중에서)  *  때로 어떤 예감들이 우리를 엄습한다. 우리 등 뒤에 누가 서 있는 듯한 느낌. 하지만 몸을 돌리면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에 꾼 어떤 꿈들은 하루 종일 당신을 따라다닌다. 낮의 빛은 그 꿈들을 쫓아낼 수 없다.(9쪽, '레티파크에 대하여' 중에서 )  *  빈센트의 어머니는 사람이 사랑 때문에 죽을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정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처음에 누군가 한 시 혹은 한 시 반까지 오라고 했다. 다른 누군가는 두 시까지 와도 된다고 했다. 그러더니 또 다른 누군가가 한 시에 보자고 했다. 내게 시간을 말한 사람들은 모두 한 팀에 속해 있었다. 나는 처음에 들은 대로 한 시까지 약속한 장소에 갔다. 그랬더니 다들 내게 말한다.   "아니,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나는 그 소리가 이렇게 들렸다.  "정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느푸른저녁 2024.07.05

단상들

*왜 어떤 이들은 남자인데 여자 같다느니, 여자인데 남자 같다느니 하는 말들을 그리도 쉽게 내뱉는 것일까? 그게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듣는 상대방의 기분도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오래전에 알았던 어떤 사람이 떠오른다. 그는 견주와 함께 지나가는 강아지를 보고, 숨길 기색이 없는 큰 목소리로 "강아지 참 못생겼다!"라고 말했다. 나는 당황스러워서, "주인이 다 듣겠어요!"라고 말했더니, 오히려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이렇게 되물었다. "못생긴 걸 못생겼다고 말하는데 뭐가 문제예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20240622)  * 소년은 동굴 안으로 끌려갔다. 이유는 모른다. 자신을 끌고 들어가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사실 소년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확실히 몰랐다. 벌판..

입속의검은잎 2024.07.05

미지를 위한 루바토

어제가 지금까지 근무하던 곳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무려 세 번의 송별 모임을 했고, 새로운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와 잦은 술자리로 인해 나는 거의 실신할 지경이었다. 업무를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모르겠다.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이다. 헌데 이상하지, 오래 있었던 곳을 떠나면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담담한 기분이 든다. 피곤함과 스트레스가 석별의 멜랑콜리한 감정보다 더 세다는 말일까? 아니면 너무 많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나조차 어떤 걸 느껴야 할지 잊어버린 걸까? 그냥 멍한 상태로 저번 주, 아니 이번 달이 흘러갔다. 그리하여 결국 이곳에서의 마지막 날은 도래했고, 7월이라는 미지의 - 지금까지는 익숙했지만, 앞으로는 아주 새로울 - 시간을 코 앞에 두고 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어느푸른저녁 2024.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