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의 안부 작년 이맘때는 무얼 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어떤 영화를 보았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왜 그런 것들이 궁금해지는지 모르겠다. 아무 생각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가도,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작년 혹은 제작년 4월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지.. 어느푸른저녁 2016.04.07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리고 타인들이 내게서 무엇을 원하든 나는 때때로 아무런 목적 없는 허망한 생각에 잠기며 나를 망각한다. 나를 보는 사람들은 나를 어떤 유형의 인간으로 구분할까. 내 목소리는 그들에게 어떻게 들릴까. 나는 다른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기억에 어떤 이미지로 남을까. 내 행동과 내 말, 겉으로 보이는 내 삶은 낯선 이들의 망.. 불안의서(書) 2016.04.04
내가 아닌 내 사진 속의 나 사진관에 가서 증명사진을 찍었다. 여권에 넣을 사진이 필요해서였다. 실로 오랜만에 증명사진이라고 하는 것을 찍은 것이다. 사진 찍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쭈뼜거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었다. 사진사가 안경까지 벗으라고 하는 바람에, 나는 카메라가 아니라 허공을 바라보는 .. 어느푸른저녁 2016.03.29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햇빛이 밝게 빛났으나 하늘은 뿌옇게 흐렸다. 뿌연 대기 속을 뚫고 비치는 햇빛이 신기하여 새삼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삼 월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일요일이었지만, 나는 내 일주일의 유일한 낙인 주말의 늦잠을 포기하고 영화를 보러 갔다. 굳이 조조영화를 보기 위한 것은 아니었.. 봄날은간다 2016.03.27
헤르만 헤세, 『헤세가 사랑한 순간들』, 을유문화사, 2015.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적어도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나는 책장에 꽂힌 책들의 제목을 유심히 바라보는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 할아버지 집에 있던 책장의 거의 모든 책들은 고모의 것이었는데,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꽂혀 있었지만 주로 철학 서적과 소설책들이 많았다. 할아버지는 종이로 씌워진 책등에 볼펜으로 멋들어지게 제목을 써놓았고, 나는 할아버지의 필체로 쓰여진 책들의 제목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오로지 제목만으로 상상해보는 것을 즐겼다. 그렇게 바라보던 책 중에 헤세의 '데미안'이나 '유리알 유희', '수레바퀴 아래서' 같은 소설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헤르만 헤세가 누군지도 모른 채 그의 소설들을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급기야 '유리알 유희'라는 알쏭달쏭한 제목의 소설을 읽어.. 흔해빠진독서 2016.03.21
인간으로 가득한 텅 빈 거리 나는 종종 이런 의문이 든다. 인간으로 가득한 텅 빈 거리를 한번이라도 적절한 관심을 갖고 관찰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말은 표현에서부터 어딘지 좀 익숙하지 않은 방식을 추구하는 듯하며, 실제로도 그렇다. 텅 빈 거리란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거리가 아니라 마치 텅 빈 거리.. 불안의서(書) 2016.03.13
헤르만 헤세, 《헤세가 사랑한 순간들》, 을유문화사, 2015. 외국의 풍광과 도시를 직면할 때 유명하거나 눈에 확 들어오는 것만 찾지 않고 본원적이고 좀 더 심오한 것을 발견하고 사랑으로 이해하려는 여행자들이 있다. 그런 사람의 기억에는 대게 우연히 마주친 작은 사건들이 특별한 광채를 빛내며 담겨 있기 마련이다.(36쪽) * 나는 산 미니아토를 떠올렸다. 피렌체 대성당의 종탑과 돔형 지붕에 대해서, 그리고 나를 그 예술 작품들로 향하게 만든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것들은 왜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걸까?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한 인간의 고된 작업과 헌신은 무가치하지 않으며, 모든 인간들이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는 각자의 고독 너머에, 인류 공통의, 바람직하고 귀하고 소중한 보편성이 존재함을 깨닫기 때문이다. 오랜 시대를 거쳐 오는 동안 수백 명의 예술가들이 인.. 기억할만한지나침 2016.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