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피한 독
나에게 글쓰기는 자기경멸이다. 하지만 나는 글쓰기를 놓지 않는다. 나에게 글쓰기는 혐오하면서도 끊을 수 없는 마약과 같다. 경멸하면서도 발을 빼지 못하는 악덕과 같다. 불가피한 독이 있다. 글쓰기는 미묘한 삶의 유형이다. 영혼의 성분, 꿈의 숨겨진 폐허에서 채취한 약초, 생각의 무덤에서 꺾어온 검은 양귀비꽃, 저승의 강변에서 요란하게 가지를 흔드는 음란한 나무의 길쭉한 잎사귀들로 이루어진. 그렇다. 글쓰기는 나에게 상실이다. 하지만 상실 아닌 것은 없다. 잃는 것은 모두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기쁨 없이 잃는다. 익명의 시냇물로 태어나 강어귀에서 바다로 합쳐지는 강물과 달리, 나는 파도가 남기고 간 해변의 물웅덩이처럼 모래 속으로 사라져 갈 뿐 결코 바다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278쪽, 페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