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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 《가능한 꿈의 공간들》, 씨네21북스, 2015.

나는 지금도 유난이라는 단어를 싫어하고 그 단어를 남용하는 자들을 경멸한다. 그들은 다수의 등 뒤에 숨어 분명히 존재하는 타자의 괴로움을 무시하는 자들이다. 현대사회를 오염시킨 수많은 악행들은 바로 다른 사람을 '유난 떠는 종자들'이라고 무시한 둔한 인간들에 의해 저질러졌다.(11쪽) * 세상엔 더 중요한 것이 있고 덜 중요한 것이 있다. 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을 묵살하거나 억압할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다.(13쪽) * 우주는 우리가 모든 걸 이해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나는 사건의 가해자들이 어떻게 사건 이후에 그렇게 뻔뻔스러울 수 있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스티븐 시걸의 팬들이 그에게서 어떤 매력을 보는지 이해하지 못..

불가피한 독

나에게 글쓰기는 자기경멸이다. 하지만 나는 글쓰기를 놓지 않는다. 나에게 글쓰기는 혐오하면서도 끊을 수 없는 마약과 같다. 경멸하면서도 발을 빼지 못하는 악덕과 같다. 불가피한 독이 있다. 글쓰기는 미묘한 삶의 유형이다. 영혼의 성분, 꿈의 숨겨진 폐허에서 채취한 약초, 생각의 무덤에서 꺾어온 검은 양귀비꽃, 저승의 강변에서 요란하게 가지를 흔드는 음란한 나무의 길쭉한 잎사귀들로 이루어진. 그렇다. 글쓰기는 나에게 상실이다. 하지만 상실 아닌 것은 없다. 잃는 것은 모두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기쁨 없이 잃는다. 익명의 시냇물로 태어나 강어귀에서 바다로 합쳐지는 강물과 달리, 나는 파도가 남기고 간 해변의 물웅덩이처럼 모래 속으로 사라져 갈 뿐 결코 바다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278쪽, 페르..

불안의서(書) 2015.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