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한번 해보기, 이것이 자연의 유일한 목표다. 발아, 성장, 그리고 번식,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그리고 우리 머리에서 나온 쓰레기 더미에 불과한 기계를 통해서도.(37쪽) * 험악한 사건으로 점철된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알프스산맥의 북쪽 기슭에서, 외면적으로는 파멸의 개념을 모르는 채로 자라났다. 그러나 자주 길에서 넘어져 다친 손에 붕대를 감고 푸크시아 관목 곁 창가에 앉아 몇 시간이고 꼼짝없이 창밖만을 쳐다보고 있을 때 너무 일찍 나를 엄습해온 눈앞에 고요히 떠오르던 소리 없는 재앙의 예감. 그때 창밖의 채마밭에는 빳빳하게 풀 먹인 흰 두건을 쓴 수녀들이 느릿느릿 채마밭 이랑 사이를 움직였는데, 막 깨어난 애벌레들과 겹쳐지며 뇌리에 새겨진 그 광경으로부터 나는 아직도 빠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