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진부함 무언가 혹은 어딘가 정지해 있는 느낌이 든다. 무언가 혹은 어딘가를 열심히 하거나 가고 있는 중인 것 같은데, 그것이 하거나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멈추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런 기분이. 이건 마치 시간이 계속 흘러가는데도 불구하고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도 같지 않.. 어느푸른저녁 2018.03.18
나만의 작은 숲을 위하여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물론 실제로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곳이 겨우 어두컴컴한 극장이냐고 누군가 힐난한다면, 뭐 어쩌겠는가, 지금의 나로선 그게 최선인데,라고 말할 수밖에. 언젠가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 봄날은간다 2018.03.11
벌레 무슨 말인지 또렷이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 내 방에 들어와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다. 남자인 것 같은데, 그게 누구인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들은 누워있는 나를 마치 비난하듯 말을 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나를 비난한다는 느낌은 확실하다. 그들은 장애인에 대해서.. 어느푸른저녁 2018.03.01
하루를 살고, 그 하루를 잊어버리고 * 정신없이 바쁜데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정신이 없는지 알 수 없다.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가 가라앉는다. 서류는 쌓여가고 해야 할 일이 적힌 메모지는 이미 어디 놓아두었는지 잊었다. 수첩에 적힌 메모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암호 혹은 낙서인가? 사람을 상대해야.. 어느푸른저녁 2018.02.19
배수아, 『뱀과 물』, 문학동네, 2017. "현실에서의 슬픔이 밤에 슬픈 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꿈의 슬픔이 다른 슬픈 꿈들을 불러오는 것이다." 다른 말들은 다 차치하고, 나는 이 소설의 마지막에 실린 평론가의 해설에서 그 문장만이 오롯이 내 가슴에 남았다. 그리고 그 문장이 이 소설에 대한 내 감상을 풀어내는 실.. 흔해빠진독서 2018.02.11
아주 가끔씩, 안부 전화만으로도 나는 충분해요, 더이상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내가 가족에게서 느끼는 이 양가적인 감정은 무엇일까. 왜 나는 가족들에게서 '나를 지탱하는 힘'과 '더이상 말하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은 무거운' 감정을 느끼는가. 왜 나는 그들을 필요로 하면서도 원하지 않는가. 그것은 사랑하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고, 원하면서도 원하지 .. 어느푸른저녁 2018.02.10
배수아, 《뱀과 물》, 문학동네, 2017. "여동생이 태어났기 때문에 얼이가 죽은 건가요?" "무슨 소리냐?" "내가 물었어요. 사람은 왜 죽는 거냐고. 그러니까 누나가 대답해줬어요, 한 명의 아기가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는 거라고." "그 말은 맞을 수도 있지만, 반드시 여동생 때문에 그 사내아이가 죽은 건 .. 기억할만한지나침 2018.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