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275

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 문학동네, 2014.

"하지만 가후쿠 씨, 우리가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설령 그 사람을 깊이 사랑한다 해도." 가후쿠는 말했다. "우리는 이십 년 가까이 함께 살았고, 친밀한 부부이자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어. 어떤 일이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고 말이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는지도 모르지.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나에게 치명적인 맹점 같은 게 있었는지도 몰라."(49쪽, 「드라이브 마이 카」) * 좀 자야겠다고 가후쿠는 생각했다. 한숨 푹 자고 눈을 뜬다. 십분이나 십오 분, 그쯤이다. 그리고 다시 무대에 서서 연기를 한다. 조명을 받고 주어진 대사를 한다. 박수를 받고 막이 내려진다. 일단 나를 벗어났다가 다시 나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온 곳은..

토마스 베른하르트,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필로소픽, 2014.

파울이 수년 동안 그 자신의 광기에 휩싸인 채 죽음을 향해 내달렸듯이, 나 역시 수년 동안 나 자신의 광기에 휩싸인 채 어느 정도는 스스로 죽음을 향해 내달린 것이 맞다. 그러다 파울의 경우는 매번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것으로 죽음의 질주가 일단 중단되곤 했으며, 내 경우는 매번 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