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난다, 2013.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나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12쪽) * 드라마가 역사를 앞에 내세울 때는 그 역사.. 기억할만한지나침 2015.08.25
배수아, 「1979」, <AXT> 7~8월호, 2015. "어린 시절은 망상이에요. 자신이 어린 시절을 가졌다는 믿음은 망상이에요. 우리는 이미 성인인 채로 언제나 조금 전에 태어나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이니까요. 그러므로 모든 기억은 망상이에요. 모든 미래도 망상이 될 거예요. 어린아이들은 모두 우리의 망상 속에서 누런 개처럼 돌아다.. 기억할만한지나침 2015.08.14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문학동네, 2007. 해가 저물어도 그 빛은 키 큰 나무 우듬지에 걸려 있듯, 꿈은 끝나도 마음은 오랫동안 그 주위를 서성거릴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런 까닭에 인생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조금 더 오래 지속된다.(32~33쪽) * 나를 오랫동안 매혹시킨 몽상은 이런 것이었다. 성경보다도 훨씬 두꺼운, 아마도.. 기억할만한지나침 2015.07.15
파스칼 키냐르, 《세상의 모든 아침》, 문학과지성사, 2013. 1650년 봄, 생트 콜롱브 부인이 죽었다. 부인은 두 살과 여섯 살 난 두 딸아이를 남겼다. 생트 콜롱브 씨는 아내의 죽음이 사무쳤다. 그는 아내를 무척 사랑했다. 그가 「회한의 무덤」을 작곡한 것은 아내의 죽음 때문이었다.(7쪽) * "자네는 춤추는 사람들이 춤추게 도와줄 수는 있네. 무대.. 기억할만한지나침 2015.06.15
듀나, 《가능한 꿈의 공간들》, 씨네21북스, 2015. 나는 지금도 유난이라는 단어를 싫어하고 그 단어를 남용하는 자들을 경멸한다. 그들은 다수의 등 뒤에 숨어 분명히 존재하는 타자의 괴로움을 무시하는 자들이다. 현대사회를 오염시킨 수많은 악행들은 바로 다른 사람을 '유난 떠는 종자들'이라고 무시한 둔한 인간들에 의해 저질러졌다.(11쪽) * 세상엔 더 중요한 것이 있고 덜 중요한 것이 있다. 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을 묵살하거나 억압할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다.(13쪽) * 우주는 우리가 모든 걸 이해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나는 사건의 가해자들이 어떻게 사건 이후에 그렇게 뻔뻔스러울 수 있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스티븐 시걸의 팬들이 그에게서 어떤 매력을 보는지 이해하지 못.. 기억할만한지나침 2015.06.11
에밀 아자르, 《가면의 생》, 마음산책, 2007. 시작이란 없다. 나는 누군가의 자식이고, 사람은 각자의 차례대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러고는 어딘가에 소속된다. 나는 그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 온갖 시도를 다 해보았다. 하지만 그 일을 해낸 사람은 없었다. 인간이란 모두 어딘가에 더해진 존재다.(9쪽) * 그곳에는 배관공, .. 기억할만한지나침 2015.05.26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산책, 2014. 사랑에 대한 글은 이제는 읽기도 쓰기도 싫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이 실은 본능, 충동, 욕망 등의 변장일 뿐이라고 단정하며 짐짓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자신이 성숙하다고 믿는 미성숙한 소년들을 뿌듯하게 만들기는 하겠으나, 그것은.. 기억할만한지나침 2015.05.03
제프 다이어,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웅진지식하우스, 2014. 캄피돌리오 언덕으로 갔다. 거기 카피톨리움의 폐허 위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고대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에 분명하게 깨닫지는 못했지만, 그런 책을 즐겁게 쓸 수 있을 거라는 한때의 희망도 언젠가는 나 자신의 폐허 안에 그대로 잠들.. 기억할만한지나침 2015.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