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275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2011.

가오리 씨,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을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뭔가 딴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87쪽) * 우리의 인생이란 기억의 축적으로 완성된다. 그렇지 않은가? 혹시 기억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지금 현재의 우리밖에 기댈 곳이 없는 셈이 된다. 기억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떻게든 자기라는 존재를 하나로 묶고, 동일시하고, 존재의 중추 같은 것을―설령 그것이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더라도―일단 설정할 수 있는 것이다.(196쪽) * 나는 좀더 제대로 된 말을, 뭔가 좀더 확실하게 마음이 담긴 말을 건넸어야 했다. 그러나 늘 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고려대학교출판부, 2006.

당신의 일상이 너무 보잘것없어 보인다고 당신의 일상을 탓하지는 마십시오. 오히려 당신 스스로를 질책하십시오. 당신의 일상의 풍요로움을 말로써 불려낼 만큼 아직 당신이 충분한 시인이 되지 못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십시오. 왜냐하면 진정한 창조자에게는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보..

김연수, 《원더보이》, 문학동네, 2012.

우주의 모든 별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우리를 향해 일제히 빛을 내뿜는 순간은 단 한 번뿐이에요. 태어나서 단 한번. 우리가 죽을 때. 그렇게. 우리는 아이로 태어나 빛으로 죽는 것이죠. 영원히 빛으로 죽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건 정말 멋진 일일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아빠?(42쪽) * 스스로, 모든 건 스스로! 외부의 힘을 개입시키지 않고, 자기 자신의 힘으로, 그래서 저절로 모든 일들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이 그렇게 되기로 한 것처럼 스스로 그렇게 되리라는 사실을 그저 믿기만 하면 돼.(91쪽) * 그건 이 현실의 표면이 살짝 찢겨나간 틈에서 쏟아지는 빛이었지. 이 현실, 고차원의 눈으로 볼 때는 아무런 깊이가 없는 3차원의 세계. 마치 종이로 만든 것과 같은. 이런 세계에서는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