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118

덩케르크

크리스토퍼 놀란의 를 보았다. 오후에 출장을 갔는데 생각보다 일찍 일이 끝나는 바람에 시간이 남아서 영화를 보기로 한 것이다. 는 보는 내내 가슴에 육중한 무언가를 올려놓은 듯 무겁게 가라앉는 영화였다. 비록 영화 속 전투기가 상공을 날아다니며 적기를 격추하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그것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해준다기 보다는 오히려 가슴을 무겁게 만들었다(전쟁 상황이라는 특수성 때문이겠지만). 이 영화는 궁지에 몰린 사람들, 수세에 몰린 사람들,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 오로지 하나의 희망만을 공통으로 품은 사람들이 나온다. 집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쉽게 가지 못하는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이 결국 집에 가게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듀나는 이 영화를 비겁함과 용감함의 이야기라고도 했는데 그 말도 맞다. 배를 ..

봄날은간다 2017.07.20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팀 버튼 감독의 은 슬픈 영화였다. 영화의 결말 슬프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 전체를 감싸는 정서가 그렇다는 말이다. 이것은 어쩌면 나 혼자만 느끼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미스 페레그린과 아이들과의 관계가 개연성이 부족하고(정서적 연결고리가 약하고), 할로우들과의 대립과 타임 루프라는 설정이 전체적으로 산만하게 느껴진다고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미스 페레그린과 아이들이 무한 타임루프 속에서 영원히 젊은 채로 살아간다는 설정 자체가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남들이 보기에 이상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그들만의 세상에서 행복하게(그런데 그들은 과연 행복할까?) 살아간다는 것 자체 말이다. 그것은 운명적 체념이 아닌가? 또 누군가는 이 영화를 팀 버튼표 엑스맨이라고 했다. 그것은 ..

봄날은간다 2016.10.03

밀정

김지운 감독의 은 심리드라마였다. 최초에 내가 생각한 의 화려한 액션은 아예 없거나 있어도 최소한도로만 있었다. 이 영화는 그러니까, 이정출 역의 송강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어떤 심리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는 또한 빛과 어둠, 그 명암의 대비가 도드라지는 영화이기도 했다. 이정출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심리의 변화 혹은 그가 처한 미묘한 상황을 명암의 대조로 표현해내고 있고, 그것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액션보다는 각각의 인물들의 관계와 그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가 상당히 인상적인 영화다.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영화는 무엇보다 연기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이정출 역의 송강호는 물론 공유의 연기도 좋았지만, 하시모토 역의 엄태구가 상당히 강렬한 인상..

봄날은간다 2016.09.25

곡성(哭聲)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으로는 늪에 빠지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몸은 자꾸만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혹은 누군가 서서히 목을 조르는 것도 같았고, 보이지도 않고 알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분명히 감지되는, 불쾌하고 음산한 무언가에 휘둘리고 있는 것도 같았다. 사람들의 잘못된 확신과 믿음이 집단적인 광기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를 영화 속 허구라고만 치부하기에는 그 메시지가 너무나도 강렬했고, 너무나 실제적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영화에 나오는 곡괭이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그것은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늪에서 너무나도 헤어 나오고 싶다는 감정이 강렬하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저 광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속 시원히 밝혀지기를 바랐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봄날은간다 2016.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