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검은잎 47

단상들

* 같은 책을 읽더라도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나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부분을 누군가는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하는가 하면, 내가 인상 깊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 걸 보면. 그래서 더 재미있는 거겠지. 하지만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재미와 놀라움보다, 비슷한 생각에서 오는 동질감이랄까, 공감의 연대가 때론 그립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이 헛헛한 기분은.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도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는 걸 오늘 처음 깨달았다.(20230328) * "이젠 떠날 때가 온 것 같아. 너무 오래 있었어." "그만큼 정이 많이 들었을 텐데."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정을 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만 강해져.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란 심플하면 할수록 좋은 것 같아. 정이..

입속의검은잎 2023.04.09

단상들

* 목이 아픈 것을 보니 봄이 오긴 올 모양이다. 삼월인 걸 귀신같이 아는구나.(20230302) * 오랜만에 가족들에게 전화를 해야지 생각하면 희한하게 그날 가족들에게서 전화가 온다. 나는 늘 한 발 늦는다. 가족들은 무심한 나를 탓하지만 나는 좀 억울하다. 정말 전화하려고 했었는데!(20230307) * 내가 자란 바닷가의 도시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달라졌으나 그 사실이 내 안의 무엇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나는 스스로를 치유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치유하지 못한다. - 배수아, 『작별들 순간들』 중에서 '나는 스스로를 치유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치유하지 못한다.' 나는 저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나는 지금껏 내 안의 무언가가 심각히 뒤틀린 채로 혹은 손상된 채로 살아왔을 테지만, 외부적인 그 어떤 ..

입속의검은잎 2023.03.30

단상들

*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받아줄 수 있는 게 가족이라지만, 네 마음 내킴을 언제까지고 받아줘야 하는 다른 가족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니. 내 하나밖에 없는! 그 말의 폭력성을 진정 모르겠니. 편하다고 함부로 할 수 있겠니.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삼키고 또 삼켰다.(20230218) * 주중에는 주중에 해야 할 일이 있고, 주말엔 주말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쉬는 날이라고 마냥 쉴 수는 없구나. 하지만 쉬는 날 하는 일이란, 기꺼이 해야 하는 것. 늘 그렇듯 휴일은 짧고 후유증은 길터이니.(20230219) * 상담이라고 해야 할까, 뭐 그 비슷한 걸 했다. 말하자면 내가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입장이었다. 그가 말했다. 도저히 참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서 찾아왔어요. 내가 물었다. 무엇 때..

입속의검은잎 2023.03.15

단상들

* 나는 늘 나에게 열중해 있었다. 늘 나 자신에게. 그리고 이제 마침내 한 번 인생의 한 토막을 살아보기를, 나에게서 나온 무엇인가를 세계 안에다 주기를, 세계와 관계를 가지고 싸움을 벌이게 되기를 열렬히 갈망했다. - 헤르만 헤세 나 역시 늘 나에게 열중해 있었다. 늘 나 자신에게. 하지만 나는 나에게서 나온 무엇인가를 세계 안에다 주기를, 세계와 관계를 가지고 싸움을 벌이게 되기를 열렬히 갈망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나에게만, 늘 나 자신에게만 열중해 있었던 것이다.(20230131) * 늘 말하기 전에 몇 번 더 생각해 보자고 하면서도, 나는 늘 무심결에 말을 내뱉고 후회를 하곤 한다.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더 나을 때가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닫는 중인데, 그 깨달음과 별개로 말은 쉬 멈춰지지 않..

입속의검은잎 2023.02.21

단상들

* 모든 게 다 한심하게 느껴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나를 둘러싼 것들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조차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들을 나는 뭐가 그리 신나서 떠들어댔던 것일까?(20230118) * 아직은, 아직까지는 그렇지 않겠니. 지금은 적응하느라 힘들 때이니, 이전에 함께 했던 사람들이 몹시 그리울지도 모르지.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고 적응이 되면 그런 그리움은 점차 옅어지겠지. 옅어지고 옅어져 결국 생각조차 나지 않겠지. 다 그런 게 아니겠니.(20230119) * 주위 사람들로부터도 그렇고, 나 자신도 내가 친절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결코 친절한 게 아니었다. 진정한 친절함이란 마음속에 어떤 기대나 바람, 증오나 짜증 같은 것들이 섞여 있지 않아야 할터인데, 나는 오늘 속으로는 화..

입속의검은잎 2023.02.05

단상들

* 12~3년 정도 된 거 같다. 당시 공항 면세점에서 산 지갑을 지금까지 쓰다가 이젠 좀 낡았다 싶어서 작년 말 여행을 가면서 공항 면세점에서 똑같은 브랜드(디자인은 좀 다른)의 지갑을 샀다. 어째,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브랜드의 지갑을 '공항'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사게 될 줄이야. 하지만 사놓고도 아직 원래 있던 지갑을 계속 사용하고 있었는데, 나는 오늘까지도 아무런 인지를 못하고 있다가 문득 책상 서랍에 케이스 채 고이 들어있는 지갑을 보고 나서야, 아, 내가 지갑을 샀었지, 하고 깨달았다. 굳이 살 필요가 없었던 것일까? 뭐, 언젠가는 쓰게 되겠지만. (20230112) * 어쩌면 이건 나만의 통과의례가 아닐까 싶다. 새해만 되면 어김없이 어딘가 탈이 나는 것을 보면. 어제는 ..

입속의검은잎 2023.01.18

단상들

* 퇴근길에 문득 어둡고 환한 도로를 걸어가는 젊은이들(?)을 보니, 내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그래서 매번 같은 곳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놀이를 했었던 그때 그 시간들이.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지만, 최소한 길 위에서 서성거리지는 않게 되었다. 그건 불행일까 다행일까. 나이가 든다는 건 어쩌면 단념하는 법을 조금씩 익혀나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라는 건 사실 존재하지 않고, 기대가 있다면 다만 무참히 꺾일 뿐이라는 걸.(2022.12.02) * 올해 첫눈은 서울에서 보았다. 문득 만나는 것과 보는 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첫눈을 '만나는 것'과 첫눈을 '보는 것'. '만나다'와 '보다'의 간격에 대..

입속의검은잎 2022.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