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가운데 모든 것이 귀찮아지는 계절이 왔다. 가만 있어도 더운 숨이 푹푹 쉬어지고, 조금만 움직여도 겨드랑이에 불쾌한 땀이 차이고, 머리가 둔해지고, 모든 일에 무기력해지는 여름! 며칠 전 시작된 장마로 집안은 퀴퀴한 곰팡이 냄새로 가득차 있고, 아침에 널어놓은 빨래는 마르지 않고, 벽지는 새어나온 .. 어느푸른저녁 2008.06.22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민음사, 2005. 나는 언젠가 내가 인생의 무의미함에 대해 깊게 탄식했을 때 니나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생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그 의미를 결코 알게 되지 못할 거예요. 그것을 묻지 않는 자만이 해답을 알아요.(27쪽) * 우울에 관해서 생각하고 있었어. 니나는 천천히 말했다. 온갖 아름다움이란 것이 일시적이고 다만 얼마 동안 빌려온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 그리고 우리가 인간들 틈이나 나무와 극장과 신문 사이에 있으면서도 마치 차가운 달 표면에 앉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독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은 누구나 다 우울하지.(65쪽) * 당신은 나에게 몹시 고독하다고 말했고 그 말에 대해 나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당신은 진부하게 받아들였을 테지만, 그러나 사실.. 기억할만한지나침 2008.06.22
거리두기 가끔 사진 속 내 모습을 볼 때 나는 당황한다. 이게 내 모습이란 말인가? 사진 속의 나는 거울을 통해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굉장히 어색하거나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짓고 있다. 때론 전혀 어울리지 않게 손가락으로 승리의 포즈까지 취하면서 말이다. 그런 내 모습이 보기 싫어서일까? 나는.. 어느푸른저녁 2008.06.19
망설임 제목을 달 때마다 무척이나 망설인다. 생각난 제목을 일단 입력해놓고 그에 맞춰 글을 쓰다보면 어느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전혀 다른 공간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니까 글을 쓰고 있다가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면 처음 생각했던 제목과는 다르거나 .. 어느푸른저녁 2008.06.14
조지 오웰, 『동물농장』, 민음사, 2005.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오래 전 텔레비전에서 만화 <동물농장>을 본 적이 있다. 그땐 그 만화의 원작이 소설인지 뭔지도 모르고 그냥 보았는데, 어린 마음에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던지 지금도 영상이 또렷하게 기억 난다. 그런 걸 보면 시공을 초월해서 읽히는 고전문학의 .. 흔해빠진독서 2008.06.09
조지 오웰, 《동물농장》, 민음사, 2005. 열두 개의 화난 목소리들이 서로 맞고함질을 치고 있었고, 그 목소리들은 서로 똑같았다. 그래, 맞아,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창 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123쪽) 기억할만한지나침 2008.06.09
타인의 블로그 팝송을 듣다가, 클래식도 듣다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도 좀 읽다가, 인터넷을 하다가 즐겨찾기 해놓은 타인의 블로그를 훑는다. 무언가를 계속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그런 느낌이 들 때 나는 타인의 블로그를 찾는다. 사실 그들을 만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지금은 어떻.. 어느푸른저녁 2008.06.05
히라노 게이치로, 『달』, 문학동네, 2003. 그런 소설이 있다. 환상문학이라고 이름붙여진, 꼭 그렇지 않더라도 소설 속에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보이거나 소설 자체가 아예 환상의 나라에서 펼쳐진다거나, 혹은 현실 속에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예컨데 하루키 소설의 등장인물 중에 말하는 까마귀랄지, 양사나이 같은) 소.. 흔해빠진독서 2008.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