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278

배수아, 《올빼미의 없음》, 창비, 2010.

어떤 이들은 죽은 자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지금 페리 선착장에서 표를 사고 있으리라. 어떤 이들은 꿈에 대해서 에쎄이를 쓰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과 상관없이 잠들기를 원한다.(73쪽, 「올빼미」 중에서) *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표현은 누가 가장 먼저 사용했을까. 뛰고 있는 심장, 살아 있는 것을 사로잡았을 때와 그렇게 사로잡혔을 때의 감정을 잘 아는 자인 그들은 사냥꾼이었을까. 그들이 따뜻한 새끼 사슴이나 토끼를 사로잡듯이. 그들은 희생물의 눈동자 속에 자기 자신을 최초로 이입시킨 자. 어디에도 출구가 없음이 너무나 명백하여 차라리 달콤하기까지 한 절대절망의 상태를 자신 안에서 상상으로 그려 보인 자. 그것을 표현이라는 방식으로 재현해낸 자들. 그렇듯 그것은 어쩌면 사로잡힌 자가 아니라 ..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문학동네, 2010.

- 여러분은 각기 크리스토프인 동시에 온갖 고난을 헤쳐나가며 강 저 편으로 건너가는 와중에 있네. 내가 이 이야기를 한 것은 종교 얘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야. 우리 모두는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가는 여행자일세. 그러나 물살이 거세기 때문에 그냥 건너갈 수는 없어..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예담, 2009.

이 포크를 봐. 앞에 세 개의 창이 있어. 하나는 동정이고 하나는 호의, 나머지 하나는 연민이야. 지금 너의 마음은 포그의 손잡이를 쥔 손과 같은 거지. 봐, 이렇게 질렀을 때 그래서 모호해지는 거야. 과연 어떤 창이 맨 먼저 대상을 파고 들었는지... 호의냐 물으면 그것만은 아닌 거 같고, 동정이냐 물..

이승우, 《한낮의 시선》, 이룸, 2009.

"사람은 근본적으로 무언가를 찾고 추구하는 존재거든. 때로는 자기가 무얼 찾는지, 왜 추구하는지도 모른 채 찾고 추구하지. 몽유병 환자처럼 말이야. 찾다가 못 찾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추구가 의미 없는 건 아니지."(41쪽) * 어느 날 문득 원치 않는 대상과 원치 않는 방법으로 대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지냈지만, 그 불안감이라고 하는 것에도 무언가 수상한 구석이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원치 않아 하면서도, 실은 원치 않는 대상과 대면하지 못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원치 않는 대상과의 조우를 원한다는 게 말이 되는 걸까. 나는 원하지 않으면서도 정말로 원하지 않는 대로 될까 봐 불안해하고, 원하면서도 정말로 원한 대로 될까 봐 마음 졸이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