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275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예담, 2009.

이 포크를 봐. 앞에 세 개의 창이 있어. 하나는 동정이고 하나는 호의, 나머지 하나는 연민이야. 지금 너의 마음은 포그의 손잡이를 쥔 손과 같은 거지. 봐, 이렇게 질렀을 때 그래서 모호해지는 거야. 과연 어떤 창이 맨 먼저 대상을 파고 들었는지... 호의냐 물으면 그것만은 아닌 거 같고, 동정이냐 물..

이승우, 《한낮의 시선》, 이룸, 2009.

"사람은 근본적으로 무언가를 찾고 추구하는 존재거든. 때로는 자기가 무얼 찾는지, 왜 추구하는지도 모른 채 찾고 추구하지. 몽유병 환자처럼 말이야. 찾다가 못 찾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추구가 의미 없는 건 아니지."(41쪽) * 어느 날 문득 원치 않는 대상과 원치 않는 방법으로 대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지냈지만, 그 불안감이라고 하는 것에도 무언가 수상한 구석이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원치 않아 하면서도, 실은 원치 않는 대상과 대면하지 못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원치 않는 대상과의 조우를 원한다는 게 말이 되는 걸까. 나는 원하지 않으면서도 정말로 원하지 않는 대로 될까 봐 불안해하고, 원하면서도 정말로 원한 대로 될까 봐 마음 졸이고 있는 것 같았다..

로맹 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문학동네, 2007.

바다란 소란스러우면서도 고요한 살아 있는 형이상학, 바라볼 때마다 자신을 잊게 해주고 가라앉혀주는 광막함, 다가와 상처를 핥아주고 체념을 부추기는 닿을 수 있는 무한이었다.(20~21쪽) *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단 한가지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의 유혹일 것이다.(21쪽) - <새들은 페루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