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278

함정임, 《나를 미치게 하는 것들》, 푸르메, 2007.

감탄하는 것도 능력이다. 반응하고, 표현하는 것도 능력이다. 불 꺼진 요트경기장, 철 지난 해운대 모래밭을 거닐며 계속 생각한다. 우리는 반응하고, 표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대를 향해, 아니 세상을 향해, 브라보! 외치는 일이 어쩌면 그동안의 삶을 뒤집는 일만큼이나 ..

투르게네프, 《첫사랑》, 문예출판사, 2006.

무심한 사람의 입으로 나는 들었노라, 죽었다는 소식을 그리고 나도 역시 무심히 그 말에 귀를 기울였노라. 오오, 청춘이여! 청춘이여! 그대는 아무것에도 구속을 받지 않는다. 그대는 마치 우주의 온갖 보물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우수도 그대에게는 위로가 되며, 비애조차 그대에게는 어울린다. 그대는 대담하며 자부심이 강하다. 그대는 "보아라, 사람들아. 세상은 오로지 나의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그대의 좋은 시절도 흘러가버려 드디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그러면 그대가 차지했던 모든 것은 햇빛을 받는 백랍(白蠟)처럼, 그리고 눈처럼 녹아 없어져버린다. 어쩌면 그대가 지닌 아름다움의 비밀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가능성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대의 충만한 힘을 다른 무엇에도 기울여보지 못하고 바..

김연수, 《밤은 노래한다》, 문학과지성사, 2008.

이제는 알겠다. 사랑은 여분의 것이다. 인생이 모두 끝나고 난 뒤에도 남아 있는 찌꺼기와 같은 것이다. 자신이 사는 현실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테츠트보』라든가, 니콜라예프스크 같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단어들 속에서, 열병에 걸린 듯 현기증을 느끼며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