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278

생텍쥐페리, 《야간비행, 남방 우편기》, 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리비에르는 좀 걸으면서 그를 엄습하는 불안감을 덜고자 밖으로 나갔다. 오직 행동을 위해서만, 극(劇)적인 행동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그였지만 이상하게 극이 멀어지면서 사적인 것이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도시의 소시민들이 야외 음악당 주위를 서성이며 겉으로는 조용한 삶을 살지만 사실..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웅진지식하우스, 2009.

말더듬이가 첫마디를 소리내기 위해서 몹시 안달하는 동안은, 마치 내계의 농밀한 끈끈이로부터 몸을 떼어내려고 버둥거리는 새와도 흡사하다. 겨우 몸을 떼어 냈을 때에는 이미 늦은 것이다. 물론 외계의 현실은 내가 버둥거리는 동안, 휴식을 취하며 기다려 줄 것처럼 생각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미시마 유키오,《가면의 고백》, 동방미디어, 1996.

나의 직감은 내가 분명히 고독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불안 ― 벌써 유년 시절부터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불안이 짙었다는 것은 앞서도 말했지만 ― 으로 나타났다. 내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 언제나 이상한, 예리한 불안이 함께 따라왔다.…… 미래에 대..

베른하르트 슐링크,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이레, 2004.

어쨌든 '그것'이 행동한다. '그것'이 내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여자를 향해 차를 몰고 가도록 만들고, '그것'이 상관에게 사생결단을 작정한 듯한 말을 하게 하고, 비록 내가 담배를 끊기로 결정했지만 '그것'이 계속해서 담배를 피우게 하고, 그리고 '그것'은 내가 지금 담배를 피우고 있으며 앞으로도 담배를 피우게 되리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담배를 끊는다.(23쪽) * 왜일까? 왜 예전엔 아름답던 것이 나중에 돌이켜보면, 단지 그것이 추한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느닷없이 깨지고 마는 것일까? 상대방이 그동안 내내 애인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왜 행복한 결혼 생활의 추억은 망가지고 마는 것일까? 그런 상황 속에서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동안은 행복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