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278

한강,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중에서

"나는 삶을 사랑해. 난 자유로워. 이렇게 여행하다 보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잖아? 오늘 너를 만난 것처럼.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가진 거나 마찬가지라고 느껴. 인디언 바구니 짜는 법을 백인들에게 강습한 적이 있지. 그때마다 난 말했어. 당신들이 만든 바구니에 기쁨을 담으라고." * "중세시대의 성당을 알아?" "성당?" "하나의 성당이 완성되려면 삼사백 년씩 걸렸던 성당들 말이야. 거기 하나하나 벽돌을 놓던 인부들……. 그들은 결코 그들의 생애에 성당의 완성을 보지 못했지." 그는 편지봉투에 성당과 인부를 끄적여 그리면서 말했다. "결국 우리가 그 사람들과 같지 않을까. 우리가 평생에 걸쳐서 시를 쓰고 소설을 쓴다고 해도, 결코 그 성당의 완성을 볼 수 없어." *..

요시모토 바나나, 《아르헨티나 할머니》중에서

"사람이 왜 유적을 만드는지 알아?" 옛날에 둘이 옥상에서 내가 사온 참깨 과자를 먹을 때, 유리 씨가 내게 물었다. 아빠는 장 보러 가고 없었던 것 같다. 화창한 5월, 동네 여기저기에서 잉어 드럼이 팔랑팔랑 헤엄치고 있었다. 그때 먹었던 과자의 참깨 맛을, 그때 마셨던 우유의 시원한 맛을 지금도 분..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중에서

... 사람이 젊어서 시를 쓰게 되면, 훌륭한 시를 쓸 수 없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意味)와 감미(甘味)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성공한 시행을 쓸 수 있을 거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사실 감정은 일찍부터 가질 수 있는 거다), 경험이기 때문이다.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수많은 도시들, 사람들, 그리고 사물들을 보아야만 한다. 동물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 느껴야 하며, 작은 꽃들이 아침에 피어날 때의 몸짓을 알아야 한다. 시인은 돌이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알지 못하는 지역의 길, 뜻밖의 만남, 오랫동안 다가오는 것을 지켜본 이별, 아직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유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