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275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내 상상력의 테두리 안에는 이미 거의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비둘기랑 분수랑 잔디랑 산책을 즐기고 있는 모녀가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풍경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는 동안, 이 며칠 사이에 처음으로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다음에 어떤 세계로 가는가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내 인생의 장미빛 광채가 전반인 35년 동안에 93퍼센트나 다 쓰여 닳아 없어졌다 해도, 그것은 그대로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나머지 7퍼센트를 소중히 끌어않은 채 이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어디까지고 바라보며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왠지는 알수 없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하나의 책임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확실히 어떤 시점부터는 나 자신의 인생이나 삶의..

파울로 코엘료,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하지만 사랑은 늘 새롭다. 생에 한 번을 겪든 두 번을 겪든 혹은 열 번을 겪든 사랑은 늘 우리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한다. 사랑은 우리를 지옥에 떨어뜨릴 수도 있고, 천국으로 보낼 수도 있다. 사랑은 늘 어딘가로 우리를 인도한다. 우리는 그저 그걸 받아들일 뿐이다. 만일 우리가 생명의 ..

무라카미 하루키, 『스푸트니크의 연인』중에서

22세의 봄, 스미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다. 드넓은 평원을 곧장 달려가는 회오리바람 같은 격렬한 사랑이었다. 그것은 지나는 길에 있는 모든 존재를 남김없이 쓰러뜨렸고, 하늘 높이 감아 올려 철저히 두들겨 부수었다. 그리고 기세를 조금도 늦추지 않고 바다를 건너 앙코르와트를 무자비하게 붕괴시키고, 한 무리의 불쌍한 호랑이들과 함께 인도의 숲을 뜨거운 열로 태워 버렸으며, 페르시아 사막의 모래바람이 되어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성으로 이루어진 어떤 도시를 통째로 모래로 묻어 버렸다. 멋지고 기념비적인 사랑이었다. 사랑에 빠진 상대는 스미레보다 17년 연상으로 이미 결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덧붙인다면 여성이었다. 그것이 모든 사건이 시작된 장소이고 모든 사건이 (대부분) 끝난 장소였다.(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