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자의 넋두리 어느 순간 내가 내 삶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한 듯, 착한 듯 스스로를 낮추고 묵묵히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억울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고 그것이 또한 최선의 길이라는 듯 한껏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내 삶을 스스로 증오하며 언젠가는 벗.. 어느푸른저녁 2007.11.01
시월의 마지막 날 누군가 그랬지 매 달 마지막 날에는 편지를 쓰는 거라고 하지만 편지를 써도 보낼 사람 없는 나같은 이는 어찌 해야 하는지 너는 알고 있니 나는 이미 안다 편지란 타인에게만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보낼 수 있다는 걸 나도 타인일 수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어 그리하여 나는 쓴다 내가 .. 어느푸른저녁 2007.10.31
싱그러움여, 내게로 싱그러운 느낌, 을 가지고 싶다. 모든 사물과 사건들에 심드렁해지고, 지치고, 지겨워지는 내 몸과 정신과 시간들에 푸릇푸릇한 물기와 풋과일의 싱그러움과 무지개의 신비로움과 산뜻함을, 삶의 촉촉한 생기를, 진정으로. 어느푸른저녁 2007.10.30
이승우, 『생의 이면』을 읽고 왜 이제야 이 책을 읽게 된 것일까. 좀 더 이른 나이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과거 혼란스러웠던 마음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가족들로부터 파생된 분노와 증오 같은 것들을 조금이나마 덜 아프게 삭힐 수 있었을 텐데. 이 책으로 말미암아 숨쉬기가 조금은 수월했을 터인데. 지금 .. 흔해빠진독서 2007.10.23
이승우, 《생의 이면》, 문이당, 1992 모든 금령이 신성한 것은, 그것들이 징벌의 공포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유발하지 않는 법은 신성으로부터 멀다. 신성은 어디 있는가. 두려움 속에 있다. 아니, 두려움에 대한 예감 속에 있다. 그런데 그것은 왜 두려운가. 금지된 것은 사람을 끈다. 그것이 이유이다. 금령은 .. 기억할만한지나침 2007.10.23
착한 아이 그는 어렸을 때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서른 살이 가까워오는 지금도 가끔 그런 말을 듣는다. 그는 주위 사람들로 부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작 그는 자신을 착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 어느푸른저녁 2007.10.19
김연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를 읽고 참 해박하고 성실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집에 든 아홉 편의 소설들이 하나같이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촘촘히 직조되어 마치 하나하나가 기기묘묘하기 그지없는 건축물을 보는 듯하였다.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여 통념을 뒤집어엎는 작가의 상.. 흔해빠진독서 2007.10.16
레몽 장, 『책 읽어주는 여자』를 읽고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책 읽어주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어쩌면 책 읽어주는 행위 그 자체에 관한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다. 마리 콩스탕스라고 하는 여자는 남는 시간을 좀 더 유익하고 생산적으로 보낼 수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친구 프랑스와즈의 조언으로 책 읽어주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책 읽.. 흔해빠진독서 2007.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