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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민음사, 2000

도무지 비교할 방법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이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초벌그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란 용어도 정확지 않은 것이, 초벌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밑그림, 한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란 초벌그림은 완성작 없는 밑그림, 무용한 초벌그림이다.(15쪽) *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보여졌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집시들이 커피잔 바닥에서 가루가 그린 형..

한강, 《그대의 차가운 손》, 문학과 지성사, 2002.

그때 나는 그의 손을 보았다. 그의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가 뭉툭하게 동강나 있었다. 다른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잘려져 있었을 뿐이다. 힘없이 허공을 향해 펼쳐져 있었을 뿐이다. 누군가 그에게 주먹질을 한들, 욕설을 퍼부으며 그의 인생은 쓰레기였다고 단정을 내린들, 그는 맞대거리를 할 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