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쓴다는 것, 혹은 일기 쓸 일이 없다는 것 책상 깊숙한 곳에 고이 넣어놓았던 일기장을 꺼내본다. 마지막으로 일기를 쓴 날이 언제였더라, 날짜를 가늠해보며 지난 내 일기를 훑어 본다. 무엇이 그리 답답하고 서러웠던 것인지 온통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 뿐이다. 쓰레기통에 쳐넣어도 좋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내 생각의 배설물들. 하지만 .. 어느푸른저녁 2005.03.20
핸드폰 유감 며칠 전 까지만 해도 핸드폰이 없던 내가 핸드폰을 구입했다. 남들은 다들 '드디어'라든가 '이제서야'라는 말을 강조하며 원시시대(?)에서 탈출한 것을 축하한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동안 핸드폰 없이도 잘 생활해왔고 그닥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느푸른저녁 2005.03.20
사랑의 비밀(소리굽쇠의 공명에 대하여) 예전 강의 시간에 교수님께서 소리굽쇠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소리 굽쇠는 저마다 일정한 파장의 공명을 가지고 있는데, 두 개의 소리 굽쇠를 쳐서 너무 가까이 맞대면 파장이 일그러진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 떨어뜨려 놓으면 서로에게 아무런 파장도 일으키지 못하게 되죠... 어느푸른저녁 2005.03.20
한밤의 귀뚜라미 음악회 이제 입추도 지나고, 말복도 지났습니다. 지금은 처서를 기다리고 있어요. 이 뜨거운 여름 속에서도 가을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제 저녁에는 잠이 안와서 낮에 읽다 덮어둔 소설책을 펴들었어요. 시간은 자정이 훨씬 넘어 있었고 창은 모두 열어놓은 상태였죠. 한 두줄 읽었을까, 순간 .. 어느푸른저녁 2005.03.20
내 작은 손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이 내 작은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생활, 미래의 불확실함을 생각하면서 거칠어진 얼굴을 쓸다가 문득 내 손을 바라본다. 작고 볼품없는 손. 나는 이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군살이 내 손에 박히게 될까. 하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아닌, 내.. 어느푸른저녁 2005.03.20
너의 전화 너의 전화가 왔다. 여전한 네 목소리. 네 목소리에 실려온 반딧불 같았던 기억. 깜박깜박 점멸하는 기억. 네 목소리만 들어도 민망하게 두근거렸던 내 심장, 그 박동소리를 너에게 들킬까봐 몰래 가슴을 누를 일도 이젠 사라지고, 나는 담담히 전화를 받는다. 나는 다 잊었다. 다 잊었다. 나는 괜찮다. .. 어느푸른저녁 2005.03.20
아픔의 이유 며칠동안 정신없이 아팠다 머리에 열이 나고, 속은 매쓰껍고, 몸은 내 말을 듣지 않고 힘없이 아래로만 가라앉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몽롱한 정신으로 누워있는 내 귓가로, 어디신가 흘러나오는 격앙된 앵커의 음성이 찌르듯 파고들었다 나는 놀라 내 귀를 막았다 김선일... 피살... 같은 .. 어느푸른저녁 2005.03.20
연필 어제 화장실을 가서 볼일을 보는데, 눈 앞에 웬 연필이 한 자루 놓여 있더군요. 그 연필이 어떻하다가 거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신기한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에도 연필을 쓰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놀라움과 반가움까지. 저만해도 초등학교(그땐 국민학교)때, 할아버지께서 손수 깎.. 어느푸른저녁 2005.03.20